사이다 발언으론 죽음 못 막는다

2025-08-05

포스코이앤씨 공사 현장에서 이틀 전(4일) 외국인 노동자가 의식불명에 빠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참담하고 안타까운 마음 한편으로,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생중계로 진행한 국무회의에서 이 회사를 콕 집어 강하게 질타한 지 고작 6일 만에 또 이런 일이 벌어진 걸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한참 고민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하는 건 (기업이) 죽음을 용인하는 것,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는 강경 발언을 쏟아냈다. 놀란 포스코 그룹 경영진이 회장 직속 TF 가동과 재발 방지 등을 담은 대국민 사과 광고를 낸 당일에 비슷한 중대 사고가 벌어졌으니, 대통령 말마따나 이 회사는 "사람 목숨을 사람 목숨으로 여기지 않고 작업 도구로 여기는" 악덕 기업인 걸까. 그리고 이런 악덕 기업이 우리 사회에 발붙이지 못하도록 정부는 "징벌적 배상에 더해 (상장했다면) 해당 기업 주가를 폭락하게 하고 건설 면허를 취소해서 아예 건설을 못 하게" 처벌을 강화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까.

처벌 엄하게 하면 산재 사망 감소?

이재명 정부, 싱가포르 성과 곡해

엄벌 아닌 장기 비전·기술로 해결

정부 할 일 먼저 하고 기업 때리길

최소한 이 날 회의에 참석한 국무위원들은 그렇게 생각한 모양이다. 현직 여당 의원인 정성호 법무부 장관과 윤호중 행안부 장관부터 기업(네이버) 출신 한성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까지 전례 없이 높은 수위 발언과 강력 제재 방안을 앞다퉈 내놓았으니 하는 말이다. 특히 노동자 출신인 고용노동부 김영훈 장관은 "직을 걸겠다"는 결기를 보이며, 형사처벌과 실질적 제재 방식을 통해 안전한 나라로 탈바꿈한 모범사례도 제시했다. 바로 싱가포르다.

김 장관 주장처럼 싱가포르는 불과 20년 전만 해도 산재 사망률이 꽤 높았지만 지금은 세계 최상위 안전 국가다. 지난 2022년 10월 경영진 산업안전보건 의무 지침(ACOP)을 도입해 적잖은 경영진에게 징역형을 물리는 등 처벌을 강화한 것도 맞다. 하지만 이는 시차를 둔 몇몇 사실을 선택적으로 짜깁기했을 뿐 실체적 진실과는 거리가 있다.

싱가포르의 2004년 산재 사망률은 근로자 10만 명당 4.9명. 한국(1만명당 2.7명, 10만명 환산 시 27명)보단 양호하지만 1명 미만인 네덜란드·독일 등 유럽과의 격차는 컸다. 싱가포르 정부의 대응은 이재명 정부와는 사뭇 달랐다. 2005년, 향후 10년 동안 사망률 50% 감소(2.5명)를 목표로 한 'WSH(Workplace Safety & Health·산업안전보건) 2015'라는 장기 구조 개혁에 나섰다. 2007년 목표를 조기 달성(2.9명)했고, 곧바로 2단계 WSH 2018(2008~2018)에 돌입해 목표(1.8명) 초과 달성(1.2명), 1.0명을 목표로 한 현재의 WSH 2028(2019~2028)도 2023년 조기 달성(0.99명)했다.

일등 공신은 기업 때리기가 아니라 국가 차원의 안전 관련 기술 연구개발(R&D) 투자였다. 특히 2014년 정부 주도 디지털 전략인 '스마트 네이션 이니셔티브'와 연계한 게 주효했다. 가령 스마트 헬멧 등 웨어러블 기기나 빅데이터 등 IT 기술로 현장을 모니터하고 위험을 예측하는 사고 예방에 초점을 맞췄다. 이를 위해 정부는 연 2억~10억 싱가포르 달러(2000억~1조원)의 예산을 썼다. 김 장관 주장과 달리 처벌이 아니라 기술로 죽음을 막은 거다. 오히려 ACOP 도입으로 경영진 형사처벌이 급증하자 매년 큰폭으로 줄던 사망률(1.2명·2024)이 거꾸로 급증했다. 물론 직접 인과 관계야 없겠지만 처벌 강화가 안전을 담보하는 것도 아니라는 얘기다.

한국으로 돌아와, 혹자가 "기업을 상대로 한 인민재판 같았다"던 그날의 문제적 국무회의에서 장관들이 "수사 인력 확보""양형기준 강화""불법 하도급 단속""원청의 비용 전가 제재""대출 심사 강화로 경제적 불이익""정책자금 제한" 등 기업을 향해 험한 단어를 쏟아내는 동안 정부가 해야 할 장기 구조 개혁이나 IT·AI 기술을 통한 해법 얘기는 일절 없었다. 포스코이앤씨가 온 내각이 일제히 손가락질해야 할 악덕 기업인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다만 이 대통령이 원하는 "산재 근절 원년"은 정의감을 앞세운 사이다 발언이나 형사처벌 겁박만으로는 절대 오지 않는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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