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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정해 놓은 틀을 깨고 직접 뛰어들어 진실을 밝힌 기자, 넬리 블라이(본명 엘리자베스 코크런). 지난 16일 막을 내린 뮤지컬 ‘넬리 블라이’는 19세기 그녀의 이야기를 무대로 소환하며 관객들에게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세상을 바꾸는 여성의 용기와 연대란 무엇인가?’
단순한 전기극을 넘어선 이 작품은 지금 이 시대에도 유효한 질문들을 관객 앞에 펼쳐놓는다. 여성이 사회에서 어떤 도전을 해야 했는지, 언론이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지, 그리고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는 지금도 제대로 전달되고 있는지를 묻는다. ‘넬리 블라이’의 김민성 작가는 어떻게 이 작품을 만들게 됐을까. 그에게 직접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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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지금까지 넬리 블라이의 이야기가 뮤지컬로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김민성 작가가 처음 넬리 블라이의 이야기를 접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올린 의문이었다. 그동안 미국에서도 몇 차례 그녀를 소재로 한 공연이 있었지만, 지속적으로 무대에 오르지는 못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여성이 주인공인 뮤지컬은 돈이 되지 않는다”는 말이 공공연히 존재했기 때문이다. 김 작가는 이러한 현실을 돌파하고자 창작집단 Project 9.1을 결성했고, 시대를 초월하는 인물의 이야기를 뮤지컬로 풀어내기로 했다.
불편하지만 중요한 이야기, 현실과 맞닿은 문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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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넬리블라이는 19세기 미국 사회의 부조리를 조명하지만, 그 안에서 다뤄지는 문제들은 결코 과거의 것이 아니다. 김 작가는 “당시에도 지금도 전혀 다를 바 없는 사건들을 중심으로 작품을 구성했다”고 설명했다. 불합리한 현실과 맞서 싸우고, 위험을 감수하는 과정에서 넬리 블라이가 지켜야 했던 것은 기자로서의 사명감뿐만 아니라, 인간에 대한 사랑과 연민이었다. 김 작가는 바로 이 지점이 작품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넬리 블라이는 여성으로서 성차별에 맞섰고, 기자로서 언론 권력과 싸웠으며, 노동자들의 삶을 조명했다. 다만 김 작가는 해당 작품이 ‘여성 서사’로만 비춰지는 것에 대해 경계했다.
“여성이 주체로서 극을 이끌어가긴 하지만 여성, 남성의 구분보다는 엘리자베스라는 인물에 집중했습니다. 기획 당시 엘리자베스는 정답을 미리 알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요, 규칙에 얽매여있는 상황에서 아무렇지 않게 취재를 해버리는 용기가 대단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엘리자베스도 이 작품을 ‘여성 서사’에만 국한시키는 것을 싫어할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자신이 여성이라서가 아니라 그저 한 명의 기자로서, 사회적 약자의 포지션을 받아들이고 행한 것, 엘리자베스에게 여성으로서의 편견은 승부욕을 일으키는 하나의 자극제였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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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이러한 넬리 블라이의 업적이 오히려 현대의 관객들에게 좌절감을 줄 수도 있다고 했다. “그녀가 몸을 던져 싸웠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여전히 바뀌지 않았다는 사실을 마주하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동시에 희망을 이야기한다.
“그 긴 세월 동안 개개인이 연대하고 투쟁해온 것들로 인해 사회가 얼마나 변했을지 생각해 본다면, 우리 사회는 분명 변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그럴 거라 믿고요. 가끔은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사실이 역설적으로 가장 큰 희망이 되어줄 겁니다.”
뮤지컬 넬리블라이는 단순한 한 여성 기자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어디에 서 있고,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지를 묻는 이야기다. 19세기의 넬리 블라이가 그랬던 것처럼, 지금도 누군가는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고 용기 있게 변화의 첫걸음을 내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