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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두 보고 가세요. 미국산 햇호두인데 속이 꽉 찼어요.”
칼바람이 살을 에던 4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경동시장 안 15곳 남짓한 견과류 점포에선 호객하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들렸다. 정월대보름(12일)이 얼마 남지 않아선지 점포마다 소비자들이 꽤 북적였다.
점포 매대 한가운데를 차지한 건 대부분 외국산 피호두(알호두). 상당수 표지판에는 ‘미국산’이란 글씨가 크게 쓰여 있었다. 가격은 1㎏ 내외(1되)당 5000원. 국산은 충북 영동산 기준 7000∼1만원에 판매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30년 가까이 장사를 해왔다는 상인 A씨는 “지난해 폭염으로 국내 호두농사가 잘 안됐다”면서 “저렴한 가격 때문인지 소비자들이 미국산을 더 많이 찾는 추세”라고 말했다.
피땅콩 역시 중국산이 더 대접받는 느낌이었다. 국산을 제치고 매대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중국산 피땅콩 가격은 1되당 3000원으로 경기 여주산(1만원)의 3분의 1 수준이었다. “국산이나 중국산이나 맛이 똑같다”는 상인의 말에 지나가던 소비자 2명은 가격표를 쳐다보더니 중국산을 2되씩 샀다.
상인 B씨는 “대보름 대목을 맞아 경기 여주산 피땅콩도 들여놨지만 국산은 인건비 때문인지 값이 비싼 편”이라며 “수년 전만 해도 소비자들이 가정용은 그래도 국산을 고집했지만 이제는 중국산도 거리낌 없이 사 가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잣을 취급하는 상인 C씨는 “지난해 비가 많이 와서 경기 가평 등 산지 작황이 좋지 않다”면서 “중국산도 당일 볶아 내놓는 것이어서 고소하다”고 추천했다.
시장 한편엔 수입 견과류 소포장품도 즐비했다. 대부분 껍질을 벗긴 후 500g·1㎏들이로 비닐 포장한 것들이다. 원산지·품목이 다양했는데 미국산 호두·아몬드·피칸·피스타치오, 인도·베트남산 캐슈넛이 대표적이었다. 이는 국내 수입 동향을 고스란히 반영한 결과로 풀이된다.
산림청 임산물수출입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미탈각 호두 수입량은 591.3t으로 2023년(411.3t)과 견줘 43.8% 증가했다. 99%가 미국산이다. 탈각 호두·아몬드 수입도 적지 않다. 관세청에 따르면 2024년 탈각 호두 수입량은 1만6368t으로 2023년(1만5526t)보다 5.4%, 탈각 아몬드(2만9076t)는 2023년(2만6904t) 대비 8.1% 늘었다.
국내 주산지의 시름은 깊어졌다. 이종곤 영동 황간농협 호두가공공장 과장은 “미국산 호두의 저가 공세에다 외국산에 대한 소비자의 거부감이 약해지면서 공장 매출액이 해마다 줄고 있다”면서 “우리 농협은 지역 300여농가에서 피호두를 매년 200t 규모로 사들이는데 3년 전만 해도 10억원을 넘던 공장 매출액이 올해는 5억원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인경 기자 why@nongm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