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내가 서경식 선생과 처음 만난 것은 2022년 3월 5일, 고려박물관에서의 강연회 때였다. 강연 뒤 간담회 시간에 《회상과 대화》라는 책에 사인을 받고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뒤 서경식 선생은 고려박물관 이사를 거쳐 공석으로 남아있던 고려박물관의 관장을 맡아 주셨다. 관장 취임 이전인 지난해(2023) 7월 31일(9월 전시를 앞둔 모임)에 실시한 <관동대지진으로부터 100년이 지난 지금 과거에 배우고, 미래의 공생사회를 만드는 교육>이라는 특별 전시계획을 앞두고 서경식 선생에게 전시 아이디어에 대한 자문을 구한 적이 있다. 그때 선생은 “‘특별 계획이란 박물관 전체의 목표 가운데 개별 기획전이 어떠한 의미를 갖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답이 나오지 않을 때는 그에 대한 생각의 시간을 가져보는 것이 중요하다’, ‘논리적ㆍ 이성적으로 발언할 수 있는 훈련이 필요하다’ 는 등의 충실한 조언을 해주셔서 전시 기획에 대한 시야가 확장되는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
이는 일본의 양심있는 시민단체인 고려박물관에서 펴낸 <고려박물관(高麗博物館)> 회보 제67호(2024.3.1.)에서 츠브라야 메구미(円谷 惠) 씨가 한 이야기다. 츠브라야 메구미 씨는 현재 고려박물관 이사다. 일본 NPO법인인 고려박물관(이사장, 무라카미 히로코' 村上啓子')은 2024년, 올 한 해 3권의 회보를 펴냈는데 제67호에서는 서경식(1951~2023) 선생의 타계를 애도하는 기사를 표지 사진으로 다뤘다.
서경식 선생은 지난해(2023) 12월 7일, 고려박물관 이사회에서 이사장으로 관장으로 내정된 바 있으나 안타깝게도 취임 전인 12월 18일 운명을 달리하는 바람에 고려박물관은 물론 나라 안팎에서 애도의 물결을 이룬 바있다. (향년 71살). 이에 고려박물관 측은 취임을 앞두고 타계한 선생의 ‘걸어온 길’을 회보 제67호에서 특집으로 다룬 것이다.
서경식 선생은 재일조선인 2세로 고국의 민주화 운동에 관여했으며 이산자(디아스포라)로서 한일 양국을 향해 국가주의ㆍ식민주의를 넘어서기를 촉구해 온 작가이자 일본 도쿄경제대학 교수를 역임한 분이다. 서경식 선생은 특히 서승(徐 勝) 전 일본 리쓰메이칸대학 교수와 인권운동가 서준식(徐俊植) 형제의 동생으로 두 형이 1971년 이른바 ‘재일교포 유학생 간첩단 사건’으로 구속되자 형들을 위한 구명 활동에 나서 민주화운동을 벌인 것으로 유명하다.
고려박물관은 회보 제67호에서 고 서경식 선생의 추도 특집에 이어 기획전시물인 <한센병과 조선인 그 벽을 넘어서>(1), <일본의 강제연행, 강제노동을 저항한다>, <관동대지진 100년 , 은폐된 조선인 학살> 등 굵직한 주제를 다룸으로써 일제국주의가 저지른 조선의 식민 역사에 대한 과오와 반성을 일본 사회에 촉구하는 데 앞장섰다. 회보 제67호 가운데 <한센병과 조선인 그 벽을 넘어서>(1)에서는,
“일본은 19세기 후반 이래 식산흥업(殖産興業), 부국강병(富國强兵)을 이뤄 국제사회의 일원이 되고자 안간힘을 썼다. 이 무렵 한센병 환자를 근대화의 훼방꾼으로 여겨 20세기 초부터 강제격리 정책을 실행했다. 사실 한센병은 감염력이 매우 낮은 질병인데도 일본정부는 ‘극히 무서운 병’이라는 공포심을 대중에게 심어 나갔다. 이러한 발상은 세계에서 유래를 볼 수 없는 인권무시 정책이었다. 특히 일본의 식민지 아래에 놓여 있었던 조선인, 그리고 일본에 건너와 빈곤과 영양불순 상태로 한센병에 걸린 환자들은 이중 삼중고에 시달리면서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야 했다.
패전(1945년) 뒤 특효약이 등장하여 한센병은 더는 불치병이 아님이 밝혀졌지만, 일본에서는 ‘나병예방법’이라고 해서 한센병(나병)이 여전히 일본국헌법 속에 존속해 왔고 1996년까지 이 법에 따른 강제격리가 자행되었다. 이에 고려박물관은 조선인 한센병 요양소 입소자들에게 빛을 찾아주기 위해 ‘나병예방법’ 폐지 뒤에도 편견과 차별 문제에 봉착해 있는 조선인들에 대한 일본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도록 이 전시를 기획하였다.”와 같은 내용의 조선인 한센병 환자에 대한 상세한 내용을 <한센병과 조선인 그 벽을 넘어서>(1)(2)에서 다뤘다.
그런가 하면 회보 제68호(2024.7.1.)에서는 ‘탈식민지주의, 그리고 공생’이라는 주제로 ‘역사의 사실을 젊은 세대로 전하기 위한 재론’에 관한 강연회, 보고회 등을 가졌다. 이어 <일본의 강제연행, 강제노동을 저항한다>는 주제를 설정하여 일본 전국 각지에 세워져 있는 추도비 현장을 답사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이어 회보 제69호(2024.11.1.)에서는 ‘역사부정과 헤이트스피치에 저항한다’라는 주제를 설정하여 ‘우리들은 인간이다’라는 영화상영을 비롯한 일본의 뿌리깊은 조선인 차별의식에 관한 역사적 배경과 엄혹한 현실을 비판하는 강연회 등을 열었다. 아울러 2025년, <전후(戰後)80년>(한국에서는 광복 80년)을 맞이하는 일본의 처지에서 차별과 살육, 전쟁에 대한 문제의 본질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하는 주제도 다루고 있다.
온전히 자원봉사자들과 전국 회원의 회비로 운영하는 어려움 속에서도 올 한해 역시 일본 고려박물관 회원들은 묵묵히, 그리고 꾸준히 ‘과거 조선의 식민지 역사를 반성하는 일’을 열성적으로 해왔다. 고려박물관 회원인 마츠자키 에미코( (松崎恵美子) 씨가 보내온 회보 3권을 꼼꼼하게 읽으면서 고려박물관 회원들의 노고에 찬사를 보낸다. 아울러 새해 2025년의 활약을 기대해 본다.
【일본 고려박물관(高麗博物館)은 어떤 곳인가?】
1. 고려박물관은 일본과 코리아(한국ㆍ조선)의 유구한 교류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전시하며, 서로의 역사와 문화를 배우고 이해하며 우호를 돈독히 하는 것을 지향한다.
2. 고려박물관은 히데요시의 두 번에 걸친 침략과 근대 식민지 시대의 과오를 반성하며 역사적 사실을 직시하여 일본과 코리아의 화해를 지향한다.
3. 고려박물관은 재일 코리안의 생활과 권리 확립에 노력하며 재일 코리언의 고유한 역사와 문화를 전하며 민족 차별 없는 공생사회의 실현을 지향한다."라는 목표로 설립한 고려박물관은 (당시 이사장 무라노 시게루) 1990년 9월, <고려박물관을 만드는 모임(高麗博物館をつくる会)>을 만들어 활동해온 순수한 시민단체로 올해(2024) 34년을 맞이한다.
고려박물관은 양심있는 일본 시민들이 만든 순수 민간단체로 전국의 회원들이 내는 회비와 자원봉사자들의 봉사로 운영하고 있다. 한국 관련 각종 기획전시, 상설전시, 강연, 한글강좌, 문화강좌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고려박물관 찾아 가는 길★
JR 야마노테선(山手線) 신오쿠보(新大久保)에서 내려 쇼쿠안도오리(職安通)
한국'광장'수퍼 건너편 광장 건물 7층
*전화:도쿄 03-5272-3510 (한국어 대응이 가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