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칼럼] 제거된 다양과 형평

2025-01-28

일터에 차별과 배타적인 문화가 있느냐는 질문을 한다면 한인 독자들은 어떤 대답을 할까.

아직 우리가 일하는 사무실과 조직에 형평과 기회 균등에 대한 관리와 감독이 필요하다고 하면 동의할까. 이제 우리 2세 아이들이 자라고 성장하는데 유리 천정은 없으며, 오직 실력과 근면함만 있다면 성공할 수 있다고 말하면 우린 쌍수를 들어 동의할 수 있을까.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 쏟아져 나온 수많은 행정명령 중에 개인적으로 가장 중압감이 강했던 부분이 있다면 바로 DEI(다양성 형평성 포용성) 감독 조직을 연방정부 모든 기관에서 없앤 조치다.

DEI는 정부 또는 사기업에서 혹시나 소수계 또는 특정 소수 그룹이 부당한 대우를 받거나, 조직 안에서 포용 되지 못하고 공평 균등한 기회를 보장받지 못하는 일은 없는지 살피는 일을 해왔다. 여기엔 흑인계, 라틴계, 아태계, 성소수자, 여성, 장애인 그룹 등이 포함된다.

주로 민주당 정권에서 활발했던 이 프로그램은 정부 조직은 물론, 교육현장과 비영리 단체에서도 기본 프로그램으로 정착했다.

DEI는 기업에서는 2003년에 본격적으로 등장해 고용, 노동, 처우에 대한 전반적인 업무에서 다양성과 균등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주기적으로 최고경영자를 비롯해 각 부서와 조직에서 DEI의 원칙과 철학을 사수하고 있는지를 지켜보는 것은 물론, 기업 리더들이 중요한 결정을 하기 전에 해당 결정이 DEI의 기준에 위배되는 일은 없는지 확인하고 조언하는 역할도 해왔다.

트럼프는 행정명령에서 이런 기능이 업무 효율성을 방해하는 최악의 정책이라는 이유를 내세웠고, 더 나아가 해당 사무실을 폐쇄하는데 협조하지 않는 공무원들은 신고하도록 의무화했다.

백악관이 DEI 폐기 깃발을 들자 기업들도 알아서 순응했다. 국내 주요 대기업들은 여러 가지 이름 아래 유지했던 DEI와 유사한 프로그램들을 접기 시작했다.

어떤 기업은 유지하겠다고 하고 어떤 기업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관련 프로그램을 없애기 시작한 것이다.

새 행정부의 눈치를 보기 시작한 것인데 이런 DEI 폐기 행렬은 곧 산업 현장에서도 부작용을 낳게 될 것이 분명하다.

주요 언론들은 신임 대통령이 추진하는 행정명령에 일단 관망하는 모습이다. 대통령 취임 후 1년 동안은 비판을 자제한다는 고전적인 워싱턴 언론관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지만, 아직 노골적인 반대 목소리는 없다.

시대에 따라 정책은 달라지고 집행의 속도와 깊이도 진화한다. 하지만 DEI는 소수계 한인사회에서 생존의 문제가 아닐까.

가장 먼저 학교를 졸업하고 기업과 공직에서 일하게 될 2세 아이들이 눈에 떠올랐다. 미국에서 교육받고 생활하고 살아가는 그들이 DEI의 감시 없이도 누구와도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자유롭게 일하며 아메리칸 드림을 실현할 수 있을까. “여전히 DEI가 일상에서 필요하다”고 주장하면 트럼프의 지적대로 시대에 뒤떨어진 차별적인 시민이 되는 것일까.

소수계가 존중받고 직장과 공직에서 꿈을 펼치는데 DEI는 조그만 안전장치다. DEI는 모두가 잠깐 잊어버리고 있을 때 균등과 형평이 사회 공동체가 지켜야 할 중요한 가치라는 것을 알려주는 스피커다.

아직 정치권에서 DEI 폐지에 대한 본격적인 반발은 보이지 않는다. 입장이 각양각색이니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아태계를 중심으로 폐지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고 대안 제시를 요구하는 활동이 필요하다고 본다.

다양성과 형평, 포용성은 특정 정파 출신의 대통령이 폐지를 논할 내용은 아니라고 본다. 미국 사회가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지키고 가꿔나가야 할 가치이기 때문이다.

최인성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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