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지정학적 리스크가 커지면서 공급망 불안이 심해지는데 정부의 해외 곡물 확보 노력은 미흡한 것으로 나타났다.
문대림 더불어민주당 의원(제주갑)이 농림축산식품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국제곡물수급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는 2022년 9월 4차 회의 이후 지금까지 2년째 열리지 않았다. 문 의원은 “국제 곡물 가격 변동이 계속됐음에도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농식품부는 2020년부터 국제곡물수급 위기 단계를 ‘안정-주의-경계-심각’ 등 4단계로 구분해 대응하고 있다. ‘주의’ 단계에 들어서면 대책위를 구성하고 ‘경계’ 때부터 회의를 개최한다. 최근 2년간 위기 단계가 ‘주의’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 회의를 열지 않았다는 게 농식품부의 설명이다.
그러나 농식품부의 시각과 달리 국내 식량안보는 불안한 상황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우리나라 2021∼2023년 연평균 곡물자급률은 19.5%에 그친다. 밀과 옥수수 자급률은 각각 0.8%, 1.7%에 불과하다. 2022년 기준 세계식량안보지수(GFSI)는 113개국 가운데 39위다. 특히 식량구매능력이 51위로 일본(6위), 중국(25위)에 비해 한참 뒤처졌다.
한국경제인협회도 ‘신산업제안 시리즈’ 보고서를 통해 “한국은 해외 곡물 유통망 구축 측면에서 일본·중국 대비 초기 단계”라면서 “국제 곡물 가격 변동 시 농산물 물가 또한 민감하게 반응하는 구조”라고 진단했다.
국제 곡물 시장의 불확실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러·우 전쟁 긴장이 다시 고조되고 있고 중동 정세도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실정이다. 국제적 밀 생산지인 유럽·흑해 지역의 기상 악화로 밀 공급 감소도 예측된다. 최근 환율이 상승세를 보이면서 업계의 비용 부담도 커지는 모양새다.
정부는 6월 시행된 ‘경제안보를 위한 공급망 안정화 지원 기본법’에 맞춰 공급망 위기에 대응하고 있다. 범정부 차원의 공급망안정화위원회를 구성하고 모든 분야를 포괄하는 통합 매뉴얼을 만드는 게 골자다. 5조원 규모의 공급망안정화기금을 활용해 공급망안정화 핵심 사업을 발굴하고 선도 사업자를 선정할 방침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민간 기업은 시장 수요를 겨냥해 움직이다보니 정부의 비축 확대와 수입선 다변화 요구에 대응하기 어렵다”면서 “선도 사업자에 기금을 지원해 민간 비축을 늘릴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더불어 공공비축도 추진한다. 다만 품목과 물량은 안보를 이유로 공개하지 않는다는 방침이다. 일각에선 자칫 ‘깜깜이 비축’이 될 경우 통합 매뉴얼에서 ‘찬밥 신세’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지유리 기자 yuriji@nongm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