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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 원상현(21)은 엉뚱한 매력이 넘치는 투수다. 지난해 데뷔 첫 선발 등판 때 “경기 몇 분 전부터 몸 풀고 나가면 되느냐”며 이강철 감독을 찾아가 물었다. 이 감독이 “그렇게 물어보는 신인은 처음 봤다”고 웃으며 풀어놓은 이 에피소드는 금방 화제가 됐다.
프로 2년 차, 호주 질롱 스프링캠프에서도 원상현은 여전히 당돌하고 씩씩하다. 감독·코치의 눈을 최대한 피하려 하는 선수가 없지 않지만 원상현은 아니다. 궁금한 것이 생길 때마다 찾아가 묻는다. 최근 숙소에서 쉬다가도 그는 제춘모 투수코치를 찾았다. 원상현은 “밥 먹고 쉬는데 갑자기 야구 생각이 나더라. 뭔가 조금만 바꾸면 공 던질 때 훨씬 힘을 잘 쓸 수 있을 것 같았다”면서 “코치님한테 숙소 옆 공터로 잠깐만 와서 봐주시면 안 되느냐고 ‘카톡’을 보냈다”고 했다. 마침 코치진 회식 중이라 그날은 만나지 못했다. 바로 다음 날 오전에 생각했던 질문을 했다. 호주 오기 전 일본 와카야마 마무리 캠프 때는 이 감독에게 ‘사우나 레슨’을 받았다. 원상현은 “사우나를 갔는데 감독님이 계시더라. 조언 많이 해주셨다”고 했다.
아직 나이도 어린데, 감독·코치와 대화가 어렵지는 않으냐고 했더니 고개를 가로저었다. “고등학교(부산고) 때부터 감독님하고 얘기 많이 하는 스타일이었다. 감독님과 (소통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했다.
원상현은 비시즌 투구 폼을 바꿨다. 키킹 후 잠깐 다리를 멈췄다가 던진다. 원상현은 “힘을 다 모으기도 전에 그냥 던지는 경향이 있었다. 이중 키킹으로 시작을 했다가 좀 더 변화를 줬다”고 설명했다. 바꾼 폼에 평가가 좋다. 이 감독은 “폼이 많이 예뻐졌다”고 했다. 제 코치는 “하체가 안정되니까 고개 흔들리는 버릇이 없어지면서 제구가 많이 좋아졌다”고 했다.
폼을 바꾸는 과정에서도 끊임없이 소통했다. 지난해 6월 2군으로 내려갔을 때부터 고민을 했다. 질롱에서도 마찬가지다. 불펜에서 다른 선수들이 운동을 마치고 라커로 들어간 뒤에도 투수조장 고영표를 붙들고 한참 가르침을 받았다. 고영표가 반복해서 시범을 보이자 원상현이 몇 번을 따라 하며 질문을 했다. 원상현은 “다리 뻗는 동작에서 오늘 별로 느낌이 안좋았다. 고영표 선배님이 (박)영현이 형한테 다리 관련해서 말씀하시길래 지금 여쭤봐야겠다고 생각하고 말씀을 드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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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상현은 올해 필승조 보직을 받았다. 이 감독은 지난해 10월 트레이드 때 SSG로 넘어간 김민의 빈자리를 원상현으로 메울 생각이다. 지난 시즌 상대적으로 경기 부담이 덜했다면, 올해는 당장 접전 상황 팀의 리드를 지켜야 한다.
벌써 기대가 크다. 원상현은 지난해 8월23일 SSG전 7회 구원 등판이 첫 선발 때보다 더 떨리고 재미있었다고 했다. SSG 최정에게 2점 홈런을 맞고 7-5, 2점 차로 쫓기는 상황, 1사에서 원상현이 마운드에 올랐다. 첫 타자 한유섬을 삼진으로 잡았고, 후속 오태곤을 볼넷으로 내보냈지만 김민식을 다시 삼진으로 잡아내며 실점 없이 이닝을 끝냈다. 원상현은 “(점수 차가 커서) 좀 쉬운 상황에 나가거나 아니면 지고 있는 때 계속 나가다가 접전 때 올라가니까 확 (긴장감이) 올라오더라. 2점 차로 이기고 있는데, 내가 점수 줘서 지면 안 되니까 선발 때보다도 더 떨렸다”고 했다.
원상현이 8회를 잘 막아주면 KT의 승리는 거의 기정사실이 된다. 9회에는 박영현이 올라온다. 그만큼 중요한 역할이다. 시즌 목표를 물었더니 “코치님이 25홀드는 하라고 하시더라”고 웃었다. 한 시즌 리그 전체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갈 수 있는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