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면 생각나는 그 사람~ 언제나 말이 없던 그 사람~”
1979년 10월 26일 저녁 가수 심수봉이 ‘그 때 그 사람’을 불렀던 곳은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가 관리하는 서울 궁정동의 안전가옥(安全家屋)이었다. 줄여서 흔히 안가로 불리던 이 곳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은 김재규 당시 중정부장의 총에 맞아 서거했다.
이렇듯 음침한 느낌을 내뿜는 안가가 최근 다시 주목받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12ㆍ3 비상계엄을 선포하기 전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등과 사전에 모의한 장소로 안가가 지목되고 있어서다.
안가가 정확히 언제 생겼는지에 대한 확실한 기록은 없다. 은밀함이 안가의 특성인 데다 그걸 관리하는 주체도 중정처럼 비밀스러운 기관이었던 까닭이다. 다만 박정희 전 대통령 재임 시절인 1960년대 후반에 만들어졌다는 게 정설이다. 많을 때는 12채 정도 운영됐다고 한다.
오랜 시간 비밀의 공간이었던 만큼 안가 관련 일화는 숱하게 전해진다.
박정희 정부 시절 재무부 장관 등을 맡아 한국 경제의 고속 성장을 이끌고 전두환 정부 초반 국무총리를 지낸 남덕우 전 총리는 자신의 회고록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이 자신에게 불쑥 대선 출마를 권유했던 일화를 적었다. 남 전 총리는 “1984년 여름, 전 전 대통령 초청으로 안가에서 저녁식사를 함께 했는데 ‘이 다음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생각이 없느냐’고 묻는 것이었다”며 “노태우 장군이 당연히 차기 후보가 될 걸로 믿고 있던 나에게는 의외의 말이었다”고 회고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2011년 1월 한나라당 지도부를 삼청동 안가로 초청해 만찬 회동을 했다. 정동기 전 감사원장 후보자가 낙마한 이후의 첫 당청 수뇌부 만남이었는데, 막걸리를 함께 마시는 동안 분위기가 냉랭해지고 당 지도부가 이 전 대통령에게 낙마 파동에 대해 사과하는 일이 알려지기도 했다.
역사 바로 세우기를 강조한 김영삼 전 대통령은 재임 시절 청와대 인근에 산재한 안가를 없애고 삼청동에 있는 안가만 한 채만 남겼다. 역대 대통령은 이후 이 안가를 사용하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