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빨갱이! 심상정 불어!” 통닭구이 고문 버틴 김문수

2025-04-08

대선주자 탐구

대선주자 탐구-김문수①

야, 이 빨갱이 새끼야! 안 불어?

1986년 5월, 계절의 여왕도 그 음침한 공간을 침범하지 못했다. 방초 만발한 대자연과 철저하게 차단된 그 콘크리트 건물 내부에 한 젊은이가 발가벗겨진 채 철제 의자에 꽁꽁 묶여 있었다. 그는 수치심과 폭언, 욕설로 인한 자연발생적 공포에 떨고 있었다. 며칠째 잠 한숨 못 자 흐리멍덩해진 의식이 날카로운 언어폭력에 문득문득 깨어났다. 하지만 그건 가장 낮은 수위의 압박 수단이었다.

너 인마. 김문수!

김문수라 불린 그 젊은이가 눈이 부신 듯 호명자를 간신히 올려다봤다.

그 여자 어디 있어? 박노해는 어디 숨었어? 빨리 불어!

김문수는 남은 기력을 모두 짜내 큰 소리로 답했다. 하지만 종래 진술의 반복으로는 그들을 만족시킬 수 없었다. 그 순간 그 빈약한 몸에 물리적 폭력이 가해지기 시작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매질로도 그의 입을 여는 데 실패하자 그들은 ‘도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어느새 아련해진 젊은 날의 김문수 전 경기지사(이하 경칭 생략)가 사회 혁신과 변혁을 꿈꾸던 왼쪽의 혁명가였다는 건 새삼스러운 놀라움을 안긴다. 보수 세력 중에서도 매우 오른쪽에 서 있는 오늘날의 그를 보면 선뜻 믿기지 않는 모습이다. 그런 그의 과거나 이후 YS의 손에 이끌려 정계에 입문했던 그 젊은 개혁파 의원의 초상이 이제는 기억 속에서 희미해진 건 세월의 농간뿐만이 아니라 김문수 개인의 극적 변화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해서 버릴 수 있는 과거는 아니다. 오히려 피 끓던 젊은 시절의 역정은 여전히 김문수의 자산이자 자랑스러운 이력이다. 그는 ‘만인(萬人)을 위해 살겠다’는 젊은 시절의 생각 역시 달라지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그저 그 목표에 이를 수 있는 첩경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을 뿐이라는 거다. 비상계엄과 탄핵심판 국면에서 급부상한 그의 인생 이야기를 ‘혁명가 김문수’로 시작하는 이유다. 그중에서도 그의 투쟁사에서 하나의 절정이었던 1986년 5월로 서두를 열어보자.

연재를 시작하며

모두가 알고 있던 그 사실은 공인받는 데 4개월이나 걸렸습니다. 누군가는 공공연하게, 누군가는 마음 졸이며, 또 다른 누군가는 안 그런 척 딴청 피우면서 출발선이 그어지기만을 기다렸습니다. 드디어 전직 대통령이 쫓겨나자 그들은 관중석에서 내려와 출발선에 일렬로 나란히 늘어섰습니다. 21대 대통령 선거일이 6월 3일로 결정되면서 너도나도 나라를 맡겠다고 앞다퉈 손을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중 한 진영의 맨 앞에 너무도 뜻밖의 인물이 섰습니다. 김문수 전 경기지사입니다. 도백 자리에서 내려온 뒤 연전연패를 거듭하며 존재감마저 희미해졌던 그는 탄핵 국면을 거치면서 국민의힘 잠룡 중 지지율 1위로 급부상했습니다. 그리고 고심 끝에 공식 출마를 선언했습니다. 그리하여 대선주자 탐구는 그로부터 시작됩니다. 그는 과연 누구였고, 어떻게 우리 앞에 등장했던 걸까요. 지금부터 대중의 망각 속에 잠들어 있던 그의 인생을 다시 끄집어내 보겠습니다.

〈이런 내용이 있어요〉

📌 1986년 5월 6일, 전광석화 같던 김문수 체포 작전

📌 “심상정 위치? 약도 그릴게요!”…김문수, 고문에 굴복?

📌 그는 왜 노동혁명가가 됐을까.

📌 여러 번의 사상 전변…첫 사상은 유교!

📌 판자촌에 호롱불…지독하게 가난했던 유년기

📌 영천 1등!…가문의 희망, 경북고·서울대 가다

‘노동운동의 전설’, 급습당하다

5월 6일 늦은 밤 서울 잠실의 한 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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