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대표 음료기업 와하하(娃哈哈)의 창업자 종칭허우(宗庆后)가 사망한 지 1년, 세 명의 혼외 자녀가 제기한 유산 소송으로 그가 생전에 지켜온 ‘가족문화’의 가치가 법정에서 흔들리고 있다.
2025년 7월, 홍콩고등법원에서는 종칭허우의 혼외 자녀라 주장하는 세 명의 미국 국적 성인이 종칭허우의 외동딸이자 와하하 그룹 회장 종푸리(宗馥莉)를 상대로 18억 달러(약 2조5000억 원)의 해외 자산 동결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해당 유산은 총 340억 위안(약 6조 6000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종칭허우는 1987년 42세의 나이에 항저우의 초등학교 매점에서 유통 사업을 시작하며 와하하를 세웠다. 1990년 어린이 영양 음료의 대성공을 시작으로 생수·탄산음료·죽·요구르트 등으로 제품군을 넓히며 ‘식품업계의 대부’로 성장, 세 차례 중국 부호 랭킹 1위에 올랐다. 상장과 대출을 거부하고 고령 직원을 해고하지 않는 전통적 방식으로 회사를 운영해 '평민부자'란 별칭을 얻었다. 그는 생전 외동딸 종푸리를 후계자로 지명했고 2024년 2월 사망 이후 종푸리가 경영권을 공식 승계했다.
충격적인 혼외 삼남매의 등장
이야기의 반전은 얼마 전 7월에 시작되었다. 종칭허우가 사망한 지 약 1년 후 예상치 못한 미국 국적의 혼외 자녀들이 등장해 존경받는 기업인의 이미지가 산산조각 났다. 사건의 원고는 종지창(Jacky Zong), 종졔리(Jessie Zong), 종지성(Jerry Zong) 등 3인으로 이들은 종칭허우와 와하하 고위 임원이자 창업 멤버인 두젠잉(杜建英)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라고 주장하고 있다. 두젠잉은 종칭허우보다 21세 연하로 저장대학 출신의 엘리트 인재이자 와하하의 해외사업을 주도한 핵심 인물이다.
이들이 주장하는 유산의 핵심은 2003년 종칭허우가 홍콩 HSBC에 설립한 신탁 계좌다. 자녀 1인당 7억 달러씩 총 21억 달러를 신탁하겠다는 구두 약속이 있었다는 것이 원고 측 주장이다. 현재까지 18억 달러가 예치돼 있고 2024년 5월 110만 달러가 외부로 빠져나간 것을 계기로 소송이 제기됐다.

이에 대해 종푸리 측은 종칭허우가 2020년에 작성한 유언장을 근거로 "해외 자산은 전부 외동딸 종푸리에게 귀속된다"고 주장한다. 다만 이 유언의 입회인은 전원 와하하 임원들이며 가족 구성원은 없었다는 점에서 법적 논란이 일고 있다. 원고 측은 또 항저우 중급인민법원에 종칭허우가 보유한 와하하 지분 29.4%의 소유권 확인 소송도 제기했다. 이 지분의 가치는 약 200억 위안(약 3조 9000억 원)에 달한다.
홍콩 법원은 이들의 친자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종지창의 1989년 항저우 출생 증명서를 증거로 받아들였고 저장성 제1병원에 보관된 종칭허우의 혈액 샘플로 DNA 검사를 진행 중이다. 동시에 와하하 전 재무임원에 대한 증인 소환도 신청돼 자금 인출의 위법성 여부가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최종 판결은 2개월 후 DNA 결과에 따라 내려질 예정이다.
1세대 민영기업인이 남기 승계 숙제
이번 소송은 와하하가 강조해온 '가족문화'의 허상을 드러냈다. 제품 포장에는 여전히 종칭허우가 직접 쓴 ‘家(가)’자가 인쇄돼 있지만 현실은 가족 간 소송으로 얼룩졌다. 유산 분쟁 결과에 따라 와하하의 지배 구조도 흔들릴 수 있다. 현재 국유지분·직원지분·종푸리의 3자 체제에서 혼외 자녀들이 승소할 경우 다 지분 분할로 복잡한 경영권 분쟁으로 비화할 가능성이 있다.
중국 1세대 기업인으로 불리는 종칭허우의 이번 유산 분쟁은 단순한 가족 갈등을 넘어 중국 민영기업의 세대 교체와 가족 승계 준비에 대해 묻는 상징적인 사건으로 기록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