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제하지 못하는 권력의 광기

2025-02-04

동트기 직전의 새벽이 가장 어둡다. 한 치 앞도 분간하기 어려운 암흑 속에서도 한 줄기 희망을 찾을 때 이 속담은 종종 인용된다. 어떻게 하루하루를 살아야 할지 두렵기만 하고 아무런 길이 보이지 않을 때 우리는 어둠을 몰아내고 세상을 다시 밝힐 한 줄기 희망을 간절히 바란다. 칠흑 같은 밤이 드리웠다는 것은 어떤 돌파구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가장 어려운 위기에 처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들은 이 속담에서 위로와 희망의 빛을 보지만, 그 이면에는 쉽게 지울 수 없는 절망과 비관의 기운이 숨겨져 있다. 낮고 짙게 드리운 구름 때문에 새벽인데도 동이 트지 않을 수 있다. 상황이 악화하면, 자기 위로의 이 말은 결국 헛된 희망으로 자기를 기만한다.

동이 트지 않을 수도 있다. 어둠을 몰아낼 어떤 빛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야말로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 선포로 초래된 우리 사회와 국가의 상황이 바로 그렇다. 우리는 지금 ‘위기 중의 위기’ 한복판에 있다. 일반 시민은 하루하루 살기도 힘든데 정신 차릴 수 없을 정도로 어지러운 정치 상황에 더욱 힘들어한다. 정치인들이 입에 달고 다니는 민생은 정말 어렵다. 인공지능으로 대변되는 21세기 첨단 기술은 양극화를 더욱 심화하고, 트럼프 2.0 시대의 시작으로 설상가상으로 글로벌 대격변이 일어난다. 위기에 또 다른 위기가 휘몰아치니 사람들은 이 모든 게 빨리 지나가기를 바란다.

그런데 위기를 극복하려면 위기에 처해 있다는 사실 인식과 함께 무엇이 위기이고, 왜 이런 위기가 일어났는지를 파악해야 한다. 위기의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모든 위기의 해결책은 오히려 위기를 더욱 가중하고 심화할 뿐이다. 위기를 극복하여 나아졌다고 생각한 병이 도져서 생존과 생명을 위태롭게 만들 수도 있다. 우리의 민주주의가 그렇다. 우리는 1987년 민주항쟁으로 탄생한 ‘87년 체제’가 이 땅에서 군사독재를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민주주의를 공고화할 것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지난해 12월3일 계엄 선포는 우리가 완전히 극복하였다고 여겼던 군부독재의 망령을 다시 깨웠다.

위기 예견엔 ‘공포의 발견술’ 필요

헌법과 법률에 따라 윤석열 대통령이 탄핵심판을 받고 수사를 받는다는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계엄 사태에 대한 시민들의 평화적인 저항과 시위는 이미 종식된 과거 권위주의 체제로 돌아갈 수 없다는 국민의 의지를 분명히 보여준다. 우리가 여러 난항을 겪으면서 이룩한 형식적 민주주의는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 지금 언론뿐만 아니라 일반인의 대화를 뒤덮고 있는 ‘법률 용어들’이 이를 잘 말해준다. 모든 게 절차대로 진행되어 위기가 해결될 것이라면 시간이 약이다. 일이 빨리 끝나기만 하면 된다. 윤석열 대통령이 탄핵되고, 심판받고, 처벌받고 사라지면, 우리 정치는 정상화되고,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지듯 민주주의는 더 공고화될 것인가?

윤석열이 끝이 아니다. 삼류정치가 낳은 괴물은 결코 윤석열로 끝나지 않는다. 형식적 민주주의는 물론 유지되겠지만, 민주주의는 더욱 위태로워질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어처구니없는 반정치적 행위를 초래한 위기의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는다면, 또 다른 괴물이 민주적 얼굴로 위장하고 나타날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제대로 인식하려면 우리는 어둠을 몰아낼 동트기의 위로와 희망보다는 미래에 닥칠 더 짙은 어두움을 미리 그려봐야 한다. “책임의 원칙”을 강조한 철학자 한스 요나스는 “악의 인식이 선의 인식보다 훨씬 쉽다”는 점에서 우리가 지켜야 할 가치와 원칙을 알아내기 위해서는 희망보다 공포를 예견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이를 “공포의 발견술”이라고 한다. 우리가 스스로 초래할 최악의 피해에 대한 두려움만이 바로 그러한 피해를 피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렇다면 87년 체제의 최대 위기로 꼽히는 12·3 계엄 사태의 원인은 무엇인가? 윤석열 대통령은 계엄 선포의 이유로 국회의 입법권을 장악한 야당에 의한 탄핵과 특검의 남발 및 예산안 삭감 등을 들었다. 더불어민주당의 입법 독재로 인해 국정이 마비되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평가는 헌법재판소와 국민의 몫이다. 중요한 것은 그가 헌법에 규정된 대통령의 권한을 행사하였다는 것이다. 대통령은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에 법률의 테두리 안에서 계엄을 선포할 수 있다. 국민의 대다수는 윤석열 대통령이 오히려 계엄 선포로 국가비상사태를 초래하였지 실제로 계엄을 선포할 정도의 비상사태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윤석열 대통령이 위헌적이고 불법적인 계엄 선포를 감행한 동기는 분명하다. 그는 본인의 책임이 작지 않은 여소야대의 상황을 견디지 못했다. 그에겐 대화와 타협을 통해 정치적으로 불리한 상황을 타개하는 정치력이 전혀 없었다. 국회를 범죄자 집단으로 몰고, 종북 반국가세력을 척결하겠다는 시대착오적인 그의 말은 ‘폭력적 권위주의’를 날것으로 드러낸다. 자신의 뜻을 펼치기 위해서는 절대적 권력이 필요하다는 신념이 바로 폭력적 권위주의다. 그는 어떤 차이와 다양성도 관용하지 못하고 결국 계엄 선포라는 극단적인 수단을 선택한 것이다.

권력은 언제나 더 많은 권력을 원한다. 이 말을 부정적으로 표현하면 “절대적 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이다. 권력의 부패는 더 많은 권력을 얻고자 하는 것이다. 막강한 행정권을 가진 대통령이 입법권과 사법권을 통제하려 하거나, 푸틴과 시진핑 같은 독재자처럼 자신의 임기를 ‘법률’로 늘리려 한다. 민주주의는 ‘권력의 자제’를 요구한다. 민주주의는 규칙에 따라 정권이 바뀌는 경기이기 때문에 정치적 상대를 완전히 짓밟아서는 안 된다. 설령 헌법과 법률에 따른 제도적 특권이 있다고 해도 함부로 휘둘러서는 안 된다. 자제하지 못하는 권력의 광기는 결국 민주주의 체제를 파괴한다.

권력 자제 민주적 덕성 보여줘야

윤석열이라는 정치적 괴물을 낳은 것은 바로 관용과 자제를 하지 못하는 우리의 삼류정치였다. 이런 삼류정치가 지속되는 한, 우리는 권력을 자제하지 못하는 괴물을 보게 될 것이다. 탄핵 이후에 닥칠 위기를 예견하려면, 공포의 발견술이 필요하다. 지금의 혼란스러운 상황이 종식되면, 우리는 또 다른 대통령을 뽑는 대선을 치르게 될 것이다. 지금 민주당은 마치 정권을 다 잡은 것처럼 행동한다. 물론 모든 절차를 가속화하려는 조급함에는 강력한 대선 주자인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를 해결해야 한다는 불안과 두려움이 없지 않다.

대선 결과의 예측은 비교적 간단하다. 설령 만에 하나, 국민의힘이 다시 승리한다고 해도 여소야대의 상황은 변하지 않기 때문에 정치 상황은 더 나아지지 않을 것이다. 내전에 가까울 정도로 갈라진 국민의 통합은 요원할 것이다. 다른 하나는 국회의 과반을 차지한 민주당이 정권을 잡는 경우이다. 민주당이 입법부뿐만 아니라 행정부도 장악하면, 우리 사회는 이제 안정되고 분열된 국민을 통합할 정도로 민주주의가 성숙할 것인가? 헌정질서는 회복되고, 민생은 정말 더 좋아질 것인가? 이 모든 문제는 더 핵심적인 물음으로 압축된다. 민주당은 절대적 권력을 자제하고, 반대당을 관용할 것인가?

국회 과반을 차지한 민주당이 이제까지 보여준 행태는 우리를 두렵게 만든다. 민주당은 이재명 대표를 수사한 검사를 탄핵하는 등 탄핵과 특검을 남발했다는 비난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후에도 권한대행을 탄핵하고, 권한대행의 권한대행까지 탄핵으로 위협하고 고발하는 등 국정과 민생 안정보다는 정권 장악에 혈안이 되었다는 의심을 떨치기 어렵다. 물론 민주당의 탄핵과 특검 발의, 예산안 삭감, 유리한 법률의 처리는 모두 합법적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자신들이 가진 의회 권한을 ‘자제하지 않고’ 마음대로 휘둘렀다는 점이다. 자신들에게 동조하지 않는 모든 사람을 내란 선전죄로 고발하는 민주파출소는 차이와 다양성을 허용하지 않는 권위주의 체제를 닮아간다. 민주당이 진정 국민을 위한 민주적 정권을 꿈꾼다면 무엇보다 권력을 자제하는 민주적 덕성을 보여줘야 한다. 그런데 과연 이게 가능할까? 이제까지도 안 그랬는데 더 많은 권력을 가지고 과연 자제할 수 있을까? 이 물음이 동트는 새벽일지 아니면 밤보다 더 암울한 새벽일지 결정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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