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치권이 민족 최대 명절 한가위를 맞아 한 목소리로 ‘민생 우선’을 다짐했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2일 “민주당의 목표는 어제보다 나아지는 국민의 삶”이라고,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국민들이 바라는 건 유능한 정책정당·민생정당”이라고 했다. 의례적인 명절 인사용 다짐일 테지만 극단 대결만 난무하는 상황에 이런 말조차 반갑게 느껴지는게 요즘 정치 현실이다. 여야가 진보·보수를 떠나 국민들이 바라는 ‘문제 해결의 정치’로 한가위를 풍요롭게 하고 있는지 자문해 볼 일이다. 진정 민심을 따르는 민생의 정치를 할 요량이라면 필요한 것은 ‘협치’, 한가지일 것이다.
지금의 정치 현실을 맘 편히 바라볼 이들이 얼마나 될까. 70여개 민생법안 처리가 여야의 극한 대치로 발목이 잡혀 있다. 응급실 뺑뺑이를 막을 응급의료법, 산불 피해지역 지원을 위한 특별법 등 정쟁 대상이 돼선 안될 법안들이 대부분이다. 아무리 거대 여당의 완력 탓을 하더라도 국민의힘이 이들 법안을 69박70일 필리버스터로 볼모삼겠다는 것은 터무니 없다. 민주당이 당심을 앞세워 ‘조희대 청문회’ 같은 강경 기조를 바꿀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것도 걱정스럽다.
여야 모두 명절 앞 민심의 경고를 직시할 필요가 있다. 정청래 대표 체제이후 민주당은 한때 두배 가깝던 국민의힘과의 지지율 격차가 오차범위로까지 좁혀졌다. ‘다수 민심’의 열쇠라 할 중도층이 민주당에 등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2일 NBS 조사를 보면 민주당의 난맥상이 이재명 대통령의 국정지지율까지 끌어 내리는 현상이 나타난다.
지난 한달 장동혁 대표 체제의 국민의힘도 극단 지지층의 눈치를 살피는 줄타기로 일관하면서 내란 세력과 온전히 결별하지 못하고 있다. 일부 최고위원의 도를 넘는 발언에 제동이 걸리지 않는 현상은 우려스럽기까지 하다. 이래서는 중도층은커녕 과거 지지층이던 합리적 보수들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조차 버거울 것이다.
여야가 힘을 모을 접점이 없지 않다. 미국과의 관세협상 난항, 초유의 국가전산망 마비 사태 등 나라 안팎으로 난제들이 쌓여 있다. 우선 국민 80.1%가 ‘부당하다’(3일 리얼미터)고 여기는 미국의 3500억달러 대미투자 선불 요구 대응부터 한 목소리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 국민 다수가 바라는 12·3 내란의 철저한 청산과 검찰·사법개혁에도 뜻을 모아야 한다. 다만 제도 변화에는 늘 예상치 못한 허점이 있는 만큼 부작용이 없도록 세심하게 제도 보완을 할 필요가 있다. 여당은 속도의 유혹을 버리고 공론에 힘 쓸 필요가 있다. 야당도 개혁에 어깃장을 놓기보다는 성공을 위해 지혜를 보태야 한다.
흥성스러워야 할 명절을 맞았지만 경제의 앞날이 불투명하면서 국민들 근심도 깊어가고 있다. 민생 문제를 해결해야 할 정치의 책무가 그 어느 때보다 크다. 여야는 겸허하게 추석 민심에 귀 기울이고 국민 삶을 최우선하는 정치를 행동으로 실천하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