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제결혼 건수가 최근 3년간(2022~2024) 꾸준히 증가하는 가운데 2024년 통계를 보면 한국 남성이 외국인을 아내로 맞는 비율이 74.7%나 됐다. 특히 한국 남성과 일본 여성의 국제결혼이 전년도보다 40%나 증가해 눈길을 끌었다. 일본 언론들이 한국 남성과 일본 여성의 결혼 이슈를 심층적으로 다룰 정도로 관심을 끌고 있다.
1990년대 국제결혼은 결혼 적령기를 넘긴 농촌 총각의 결혼을 위해 시작됐다. 결혼 중개업체를 통해 국제결혼을 하다 보니 경제적 거래의 속성이 강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도시 거주 사무직이나 관리직 등 화이트칼라 남성으로 확대되고 있다. 국제결혼이 중매업체를 통한 거래적 결혼 위주에서 이제는 온라인 만남이나 직장·유학·이민 등 자연스러운 교류를 통한 ‘대등한 파트너십 결혼’으로 바뀌고 있다.
한국은 신랑의 주거 부담 너무 커
일본은 스몰웨딩 많아 부담 작아
부부 중심으로 결혼 문화 바꿔야

한국 남성과 일본 여성의 국제결혼이 증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의 국민소득이 증가하면서 이제는 한국과 일본의 체감 경제 수준이 비슷해졌다. 한류 콘텐트에 그려진 한국 남성의 자상하고 세련된 이미지에 로망을 갖게 된 일본 여성이 증가하고, 일본 여성은 섬세하고 배려심이 있다는 이미지가 한국 남성에게 긍정적 영향을 줬다는 분석이 있다. 한·일 관계 개선과 인적 교류 증가로 일본에 체류하거나 출장 중인 한국 남성이 일본 여성을 만나기가 한결 쉬워졌다. 요즘 한국 직장 남성들이 일본 결혼정보회사를 통해 일본에 가서 맞선을 보는 적극적인 사례도 늘고 있다.
한국 남성이 일본 여성과의 결혼에 적극성을 띄게 된 것은 일본 여성과의 결혼 비용이 낮고 합리적이라는 인식도 한몫하는 것 같다. 일본 신혼부부는 각자 능력과 상황에 맞게 원룸이나 작은 임대주택에서 출발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일본에서는 결혼 상대방에게 과도하게 요구하는 것을 무례하거나 낯 두꺼운 것으로 여기고 경계하는 문화가 있다. 결혼식에도 가까운 친지나 친한 지인들만 초대하는 ‘스몰 웨딩’이 많고 결혼식을 아예 생략하는 ‘나시콘(결혼식 없는 결혼)’을 선택하는 신혼부부도 늘고 있다.
일본은 1980년대 거품 경제가 1990년대 초에 버블 붕괴로 이어지면서 이후 30년가량 장기 불황을 겪고 있다. 이에 따라 장기간 집값 하락을 경험했던 일본인들은 집을 ‘감가상각 자산’으로 인식하게 됐다. 특히 MZ세대는 집을 미래의 투자 자산이 아니라 가치가 하락하는 소비재로 여긴다. 신혼부부는 대부분 월세로 시작하며 부부가 함께 돈을 모아 집을 마련하는 것이 보편적이다.
일본은 1868년 메이지 유신(明治維新) 이후에 서양식 근대화 정책과 가족제도 변혁을 받아들였다. 개인주의 가치관이 정착돼 자녀의 조기 독립과 가족 유대 약화 현상이 뚜렷하다. 부모와 자녀의 정서적 거리가 한국보다 상대적으로 멀고, 부모는 자녀 결혼에 가급적 개입하지 않는다. 부모가 자녀 결혼에 목돈을 대주는 경우도 드물다.
반면 한국사회는 결혼을 두 남녀의 결합을 넘어 양가 가족과 주변 사회에 보여주는 중요한 사회적 행위로 간주한다. 이 때문에 경제적으로 완비된 결혼 생활을 시작하는 것을 사회적 안정과 성공의 상징으로 여긴다. 많은 하객을 초대하는 보여주기식 결혼이 많고 주거는 적어도 억대 아파트 전세 이상으로 시작하고 싶어 한다. 결혼정보업체 듀오에 따르면 올해 결혼식 평균비용은 3억6173만원으로 조사됐다. 이 비용 중에 84.1%가 신혼집 마련 비용일 정도로 주거 부담이 컸다. 무엇보다 남성에 대한 주거 부담 기대가 여전히 높다. 결혼을 기피하고 결혼 연령이 늦어지는 요인으로 지적된다.
이제 한국의 결혼 문화도 양가 부모의 역할은 줄이고, 남녀가 힘을 합쳐 결혼 생활을 이뤄가는 개인과 부부 중심으로 성격이 바뀔 때가 됐다. 신혼부부가 경제적 능력에 맞게 소형임대주택에서 시작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문화가 형성돼야 한다. 정부는 신혼부부가 부담 없이 출발할 수 있도록 직장 가까운 곳에 깔끔한 임대주택을 충분히 공급해야 한다. 아울러 남녀가 서로에게 좋은 이미지를 가질 수 있도록 젠더 갈등을 푸는 방향으로 사회 분위기를 바꿔가야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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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숙미 한반도선진화재단 양성평등위원장·전 인구보건복지협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