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폐허로 변한 임하1리…주민들 망연자실
28일 오전 찾은 경북 안동시 임하면 임하1리는 폭격을 맞은 것처럼 폐허로 변해있었다. 지붕까지 완전히 주저앉은 집이 여러 채 보였다. 산과 가까운 수로에는 아직 연기가 피어올랐고, 탄내가 진동했다. 길가엔 대피하려다 버리고 간 자동차가 불에 타 뼈대만 남았다.
180여 가구가 사는 이 마을은 의성에서 올라온 ‘괴물 산불’이 확산하면서 가옥과 농지, 인명 피해가 잇따른 곳이다. 지난 25일 강풍과 함께 불길이 마을을 덮치면서 당일 오후 5시 30분쯤 주민대피령이 내려졌다. 10여 분만에 불길이 온 마을로 번지면서 주민 대부분 맨몸으로 나왔다고 한다. 안동시로 대피했던 일부 주민은 전날 마을로 돌아와 마을회관을 임시 숙소로 쓰고 있다.
주민 강정용(75)씨는 불에 탄 집과 창고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 이번 산불로 594㎡(180평) 남짓한 부지에 지어진 집과 큰 창고가 전소했다. 강씨는 “산불 확산 당시 집 천장에서 ‘다닥다닥’하는 소리가 나 밖으로 나왔더니, 이미 창고와 집 천장까지 불이 옮겨붙은 상태였다”며 “십원 한장 챙길 겨를도 없이 마을 밖으로 대피했다”고 말했다.

“맨몸으로 도망…집·농기계 모두 불 타”
창고를 둘러보니 콤바인과 관리기, 이양기, 트랙터 등 농기계가 다 타고 뼈대만 앙상하게 남아있었다. 강씨는 9.9㏊(3만평) 농지에 벼농사와 옥수수 농사를 짓는다. 강씨는 “다음 달 옥수수 농사를 시작하려면 관리기가 있어야 하는데 모두 불에 타버렸다”며 “잠은 마을회관에서 자도 되니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달라”고 하소연했다.
마을회관에서 만난 부녀회장 탁옥순(67)씨는 맨투맨 티셔츠와 후드티 등 헌 옷 2장, 등산화, 수건, 간단한 의료용품이 든 적십자 구호 물품을 든 채 눈물을 글썽였다. 탁씨는 “오늘은 헌 옷이라도 받아 옷을 갈아입을 수 있게 됐다”며 “논농사를 지어야 하는데 이앙기와 모판 2300개가 타버렸다. 작년 가을에 새로 산 트랙터도 모두 탔다”고 했다.
탁씨는 임하리 산불이 나기 전 아랫마을에서 먼저 대피해 온 주민을 마을회관에서 돌보고 있었다고 한다. 탁씨는 “자원봉사를 하던 중 마을에 산불이 옮겨붙으면서 맨몸으로 대피할 수밖에 없었다”며 “대피 인파가 몰리는 바람에 마을 인근 다리에 한동안 고립됐다가, 불길이 지나간 뒤에야 겨우 빠져나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용찬(69)씨는 “호흡기 질환이 있어서 병원 치료를 받던 중 집이 불에 타 갈 곳 없는 신세가 됐다”며 “몸도 아픈데 언제까지 임시숙소에서 생활해야 할지 막막하다”고 걱정했다.

토마토·애호박·과수 등 농작물 피해
시설채소 등 농작물 피해도 컸다. 이날 마을 앞에서는 황모(61)씨가 불에 탄 비닐하우스를 망연자실한 채 바라보고 있었다. 황씨는 토마토와 애호박을 키우는 비닐하우스 8동 중 7동이 산불에 망가졌다. 비닐하우스 온도를 유지하는 커튼과 전기온풍기, 기름보일러 등 전기장비와 하우스마다 비치했던 트랙터 등 농기계가 다 탔다.
황씨는 “심지어 물 뜨는 바가지 하나 건지지 못했다”며 “마을엔 전기가 들어왔는데 아직 농사용 전기는 복구가 되지 않아 손을 대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일영(57)씨는 “4000평(1만3200㎡) 땅에 기르던 자두나무가 몽땅 탔다”고 하소연했다. 한 주민은 “최근 파종을 마친 옥수수밭이 불에 탔다”고 울먹였다.
임하1리 주민들은 이번 산불로 주택 40여 채가 전소하고, 10여 채가 무너지는 등 피해를 본 것으로 자체 집계했다. 유창규(68) 이장은 “산불이 태울 것은 다 태우고 지나갔다”며 “산불 정리가 끝나지 않아서 정확한 농작물 피해는 파악하지 못했다”고 했다. 이어 “출향인들로부터 이불과 담요·전기매트 같은 구호 물품을 전달받을 예정이지만, 임시숙소에서 머물기엔 고령자가 많아 걱정”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