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심 원고 승소→2심 원고 패소
요양급여 중복 아닌 손해에 대해서 보험사 변제 의무 인정
2심 '채권자 동순위설' 뒤집고, '공단우선설' 재차 확인
[서울=뉴스핌] 김현구 기자 = 대법원이 국민건강보험공단(공단)과 민간 보험 사이 발생한 분쟁에서 공단의 권리나 구상권이 민간 보험보다 우선 적용된다는 '공단우선설'을 재확인했다.
보험사가 피해자에게 직접 지급한 보험금 중 공단이 요양급여를 지급한 치료비와 동일한 내역에 해당하는 부분에 대해선 공단에 대해 변제할 의무가 없지만, 요양급여와 중복되지 않는 손해에 대해선 보험사가 공단에 변제할 의무가 있어 공단이 구상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취지다.
대법원 2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공단이 한화손해보험(손보)을 상대로 낸 구상금 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대구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7일 밝혔다.

A씨 등 10명은 B 여행사와 여행계약을 체결했으며, 한화손보는 B 여행사와 여행사 업무 전문 배상책임을 담보하는 전문인 배상책임보험(대인대물일괄 총 보상한도 5억원, 1청구 당 3억원 한도) 계약을 체결했다.
A씨 등은 2017년 12월 14일 태국 치앙마이에서 여행 중 탑승 차량이 도로 옆 6m 아래로 전복돼 부상을 입었다. 이들은 태국 현지에서 응급치료를 받은 후 귀국해 공단이 지정한 요양기관에서 치료를 받았고, 공단은 각 요양기관에 전체 치료비 5370만원 중 3930만원을 지급했다.
한화손보는 2018년 두 차례에 걸쳐 피해자들에게 약 3억원을 지급했다. B 여행사는 손해액 3억200만원, 보상한도액 3억원, 자기부담금 200만원, 손해액 옆에 '공단구상금 및 피보험자(B 여행사) 변제금액 제외'라는 설명이 쓰여 있는 확인서를 한화손보에 작성해 줬다.
이후 공단은 피해자들에게 한 보험급여에 대해 가해자인 B 여행사, B 여행사의 보험자인 한화손보에 대해 구상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3930만원에 대한 구상금을 청구했다. 구상금은 타인의 채무를 대신 변제한 사람이 변제 금액의 지급을 청구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이에 대해 한화손보는 피해자들에게 책임보험금 한도액 3억원을 모두 지급했으며, B 여행사로부터 공단의 구상권이 발생하더라도 한화손보의 책임이 없음을 확인받고 보험금을 지급했으므로 공단은 B 여행사에만 구상할 수 있다고 반박했다.
1심은 한화손보가 피해자들에게 직접 보험금을 지급했어도 공단은 변제한 치료비에 대해 구상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판단한 반면, 2심은 한화손보가 피해자들에게 보상한도액까지 적법하게 보험금을 지급한 만큼 한화손보의 보험금지급의무와 공단의 구상권 모두 소멸했다고 봤다.
즉 2심은 공단우선설이 아닌 '채권자 동순위설' 입장에서 공제를 인정한 것이다. 하지만 대법원은 공단우선설을 재확인하며 2심 판단을 뒤집었다.
재판부는 "공단이 피해자에게 보험급여를 한 후 가해자 또는 그 보험자에 대한 손해배상채권을 대위하는 경우, 피해자의 과실 등을 고려해 산정된 손해배상채권의 범위 내에서 보험급여액 중 가해자의 책임비율에 해당하는 금액을 대위할 수 있다"고 전제했다.
이어 "여기에서 공단의 보험급여 이후 가해자 또는 그 보험자가 손해배상 명목으로 피해자에게 지급한 돈을 공제할 수 없다"면서도 "다만 공단이 피해자를 대위해 얻는 손해배상채권은 보험급여와 손해배상이 상호보완적 관계에 있어 보험급여의 실시로 가해자에 대한 손해배상채권이 전보돼 소멸될 수 있는 경우에 한정된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따라서 책임보험과 관련해 그 한도액이 있는 때에는 공단이 가해자의 보험자에게 손해배상채권을 대위 청구한 경우 그 보험자가 피해자에게 책임보험금으로 지급한 돈이 건강보험 보험급여와 상호보완적 관계에 있지 않다면 이는 보험자가 공단에 지급할 책임보험금에서 공제돼야 한다"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원고가 피해자들의 손해배상채권을 대위하게 된 이후에는 피고가 책임보험금을 피해자들에게 지급했어도 원고가 대위한 손해배상청구를 거부할 수 없다"면서도 "다만 피고가 피해자들에게 지급한 책임보험금 중 건강보험 보험급여와 상호보완적인 관계에 있지 않은 부분은 피고가 원고에게 지급할 책임보험금에서 공제돼야 한다"고 부연했다.
끝으로 재판부는 "그런데도 원심은 피고가 피해자들에게 책임보험금 보상한도액까지 보험금을 지급함으로써 원고의 피고에 대한 구상권이 소멸했다고 판단했다"며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hyun9@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