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 ‘보물’인데도 행방불명···도난당한 채 10년 넘게 못 찾는 국가유산 553건

2025-10-12

국가유산청에 도난 신고를 한 지 10년이 넘었는데도 현재까지 회수되지 않은 국가유산이 500건 이상인 것으로 12일 확인됐다. 회수되지 않은 유산 중에는 국보(1건)와 보물(10건) 등도 포함된 사실이 확인됐다. 도난 방지를 위한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임오경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가유산청으로부터 받은 ‘국가유산 도난 미회수 현황’ 자료에 따르면, 1986~2015년 신고된 피해 사례 가운데 10년 이상 행방을 찾지 못했거나 원래 소유자 또는 관리자에게 돌려보내지 못한 경우가 총 553건으로 나타났다.

이 중 국가지정유산은 국보, 보물, 국가민속문화유산(5건), 천연기념물(2건), 국가등록문화유산(1건), 사적(1건) 등 총 20건으로 확인됐다.

1987년 국보로 지정된 ‘소원화개첩’(小苑花開帖)은 20년 넘게 찾지 못하고 있다. 소원화개첩은 조선 세종의 셋째 아들이자 명필가인 안평대군(1418~1453)의 글씨로, 국내에서 발견된 그의 유일한 작품이다.

국가유산청은 소원화개첩에 대해 “안평대군은 당시 복잡한 정권 다툼에 말려들어 젊은 나이에 수양대군에게 죽임을 당하였고, 죽은 뒤에는 그의 글씨가 불태워져 현재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비문이나 글씨교본 그리고 일본에 있는 몽유도원도의 발문과 여기 소원화개첩에서 뿐”이라고 누리집에서 설명했다.

소원화개첩은 서울 종로 인사동에서 화랑을 운영했던 한 고미술 수집가가 소장했는데, 2001년 도난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경찰은 해외 유출 가능성까지 열어두고 2010년 국제형사경찰기구(ICPO·인터폴)를 통해 국제 수배하기도 했다.

독립운동가 안중근 의사가 1910년 뤼순 감옥에서 쓴 ‘치악의악식자부족여의’ 유묵은 아직도 행방을 알지 못하는 상태다. ‘허름한 옷과 거친 음식을 부끄러워하는 사람은 함께 도를 논할 수 없다’는 뜻의 이 유묵은 1972년 보물로 지정됐다. 유묵은 생전에 남긴 글씨나 그림을 일컫는 말이다.

2011년 한 방송사의 시사 프로그램을 통해 유묵의 소재가 불분명하다는 내용이 알려진 뒤 국가유산청은 누리집을 통해 관련 정보를 공개하고 있다. 누리집에 따르면 이 유묵은 홍익대 설립자인 이도영(1913~1973)이 청와대에 기증해, 1976년 청와대로 소유자가 변경됐다. 실종된 시점과 장소는 파악되지 않았다. 누리집에서도 피해발생일은 ‘미정(1976.3.17. 청와대로 소유자 변경)’으로만 명시하고 있다.

미회수된 비지정유산 중에는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 초고본인 을미일기(1928년 도난 추정)와 우의정 증직교지(1969년 도난 추정) 등이 포함됐다. 1932년 국민 성금으로 현충사를 중건할 당시 이상범 화백이 그린 이순신 장군 영정도 유실된 후 행방이 묘연하다.

문화유산의 보존 및 활용에 관한 법률에 따라 국가유산이 멸실, 유실, 도난, 훼손된 경우 소유자나 관리자는 국가유산청에 신고해야 한다. 신고서가 접수되면 시·도 기관을 거쳐 국가유산청에서 처리한다. 국가유산청 국가유산사범단속팀이 맡으며, 필요시 경찰과 공조한다.

임 의원은 “도난 문화유산에 대한 회수율이 매우 저조하다”며 “국가유산사범단속팀 내 전문 인력 보완과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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