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포칼립스 문학 거장, 노벨상 품다

2025-10-09

올해 노벨문학상은 ‘묵시록(아포칼립스·Apocalypse) 문학의 거장’이라 불리는 헝가리 작가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71)에게 돌아갔다. 그는 난해하면서도 독창적인 문장으로 종말과 파국으로 치닫는 세계와 그 속의 인간을 그려온 작가다. 헝가리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케르테스 임레(2002) 이후 두 번째며, 헝가리는 총 16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보유한 국가가 됐다.

스웨덴 한림원은 9일(현지시간) 전 세계에 생중계된 노벨문학상 수상자 발표에서 크러스너호르커이의 소설을 “묵시록적 공포 속에서도 예술의 힘을 재확인시켜 주는 강렬하고 비전적인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또 “작가 특유의 예술적 시선은 어떤 환상에도 물들지 않은 채 인간의 약한 본성을 직시하게 하는 예술의 힘을 보여준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크러스너호르커이는 수상 직후 스웨덴 라디오방송을 통해 “매우 기쁘고 평온하면서도 긴장된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한림원은 그의 문학에 대해 “프란츠 카프카에서 토마스 베른하르트에 이르는 중부 유럽 전통의 맥을 잇는 훌륭한 서사”라면서 “유럽적인 뿌리를 갖추고 있으나 동시에 일본과 중국을 여행하면서 받은 영감을 녹여냄으로써 중부 유럽 그 이상을 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1954년 헝가리 줄러에서 태어난 크러스너호르커이는 부다페스트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하고 1987년 독일로 유학을 갔다. 이후 프랑스·네덜란드·이탈리아·중국·일본 등에 체류하며 작품활동을 해 왔다. 주요 작품으로는 『사탄탱고』(1985), 『저항의 멜랑콜리』(1989), 『전쟁과 전쟁』(1999), 『서왕모의 강림』(2008), 『마지막 늑대』(2009), 『세계는 계속된다』(2013) 등이 있다. 국내에는 『사탄탱고』 등 총 6권의 대표작이 소개돼 있다. 모두 알마 출판사에서 출간됐다.

작품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묵시록적 멜랑콜리’다. 『사탄탱고』를 번역한 조원규 번역가는 “세계의 종말을 예감하는 동시에 그것을 깊이 응시하는 슬픔이 공존한다”고 표현했다. 『벵크하임 남작의 귀향』을 번역한 노승영 번역가는 “크러스너호르커이의 작품에는 인물이 간절히 원하던 것이 현실이 되는 순간 모든 것이 파국으로 치닫는 장면이 반복된다”며 “이는 헝가리의 정치·사회 현실과 세계가 파국으로 향하는 정세를 반영한다”고 말했다.

형식도 독창적이고 실험적이다. 조원규 번역가는 “크러스너호르커이의 소설은 『사탄탱고』처럼 1부와 2부가 거울처럼 마주보며 순환하는 폐쇄회로일 때도 있고, 『벵크하임 남작의 귀향』처럼 구조가 피보나치 수열을 따르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크러스너호르커이는 스위스의 슈피허 문학상(2010), 독일의 뷔뤼케 베를린 문학상(2010) 등을 받았고 2015년에는 헝가리 작가 최초로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수상했다. 2018년에는 『세계는 계속된다』로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 후보에 또 한번 이름을 올렸다.

『사탄탱고』는 1994년 벨라 타르 감독을 통해 7시간18분 러닝타임의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미국 평론가 수전 손택은 그를 “현존하는 묵시록 문학의 최고 거장”이라고 일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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