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3개월 만에 도로 붕괴 사고로 인명 피해 발생
연일 사과로 조기 진화 나섰지만 이미지 타격 불가피
실적 개선 시급한데 영업정지 넘어 중처법 적용 우려

주우정 현대엔지니어링 대표이사(사장)가 취임 3개월 만에 대형 악재를 맞닥뜨리면서 리더십 타격 위기가 초래됐다. 회사가 시공사로 나선 도로 건설 현장에서 대규모 인명 사고가 발생하면서 기업의 신뢰도와 이미지 훼손이 불가피해진 상황이다.
4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주우정 대표는 실적 개선의 특명을 받고 부임한 회사에서 이를 제대로 시작해 보지 못한 채 영업정지와 중대재해처벌법(중대재해법) 적용이라는 위기의 파고를 먼저 넘어서야 하는 상황을 마주하게 됐다.
앞서 지난달 25일 현대엔지니어링이 시공사로 참여한 경기 안성시 서운면 산평리 세종~안성고속도로 건설 현장에서 교량 상판 구조물인 거더가 무너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사망자 4명과 부상자 6명 등 10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지난해 11월 취임한 주 대표로서는 예기치 못한 사고로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 직면하게 된 상황이다. 사고 발생 이후 주 대표는 이튿날 공식 사과문을 발표한 데 이어 이틀 뒤인 28일에는 기자회견을 열고 직접 고개를 숙이는 등 적극적인 자세로 대응하며 조기 진화에 나섰다.
하지만 당장 경찰의 수사에 직면하게 된 상황이다. 경찰은 지난달 28일 주 대표가 기자회견을 진행하던 시간에현대엔지니어링 본사에 대한 압수수색을 단행했다. 향후 수사 과정을 지켜봐야겠지만 이번 사고로 영업정지를 넘어 중대재해법 적용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다.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이나 건설산업법에 따라 고의와 과실을 통한 부실시공으로 인명사고가 발생한 경우, 중대 재해의 정도에 따라 1년 내 영업정지 조치를 취할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중대재해법 적용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중대재해법은 안전·보건 조치의무를 위반해 인명피해를 발생하게 한 사업주, 경영책임자, 공무원 및 법인의 처벌 등을 규정함으로써 중대재해를 예방하고 시민과 종사자의 생명과 신체를 보호함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지난 2021년 1월 제정돼 이듬해인 2022년 1월 27일부터 시행돼 오고 있다.
이 법에 따르면 이번 사고 현장에서 노동자들을 위한 안전관리 조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발생한 사고임이 입증되고 중대재해로 인정되면 사업주나 경영책임자가 처벌을 받게 된다는 의미다. 중대재해법에서는 실질적 운영하는 사업장에서 1명 이상 사망자가 나올 경우 책임을 물을 수 있게 돼 있다.
사망한 노동자가 하청업체 직원이라도 원청업체 대표이사까지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돼 있어 주 대표도 처벌 대상에 포함될 수 있다. 이미 경찰은 이와 관련해 도급업체 소속 현장소장을 형사입건한 상태로 경찰의 수사 외에도 고용노동부가 산안법 및 중대재해법을 위반했는지 조사에 착수한 상태다.
주 대표로서는 지난해 1조원이 넘는 영업손실을 기록한 회사를 새로 맡아 실적 개선에 전력해야 하는 상황에서 예기치 못한 대형 악재에 맞닥뜨리게 된 것이다.

주 대표는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그룹 경영을 총괄하기 시작했던 지난 2018년 말 기아 재경본부장(CFO·당시 전무)으로 선임된 후 2020년과 지난해 두 번이나 재선임될 정도로 성과를 인정받은 인물이다. 기아의 실적 개선을 이끌면서 정 회장의 두터운 신임을 받으며 재무전문가로서의 그룹 내 입지를 확고히 했다.
지난해 말 그룹 인사에서 기아 재경본부장(부사장)에서 현대엔지니어링 대표이사 사장으로 승진한 것은 이를 입증한다. 건설사 최고경영자(CEO)에 건설업 경험이 없는 재무전문가를 앉힌 것은 그가 기아에서 그랬듯 실적 반등을 통한 수익성 개선을 이뤄낼 것이라는 그룹의 기대감이 그 어느 때보다 컸다는 방증이다.
주 대표도 이러한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회사 조직 및 사업 구조 개선을 통한 변화와 혁신을 꾀하려 했지만 일단 이번 사고 수습과 대책 마련이 발등에 떨어진 불이 됐다. 대형 사고 발생으로 인한 책임과 비용 증가, 회사의 신뢰도 하락으로 인한 공사 수주에 타격이 불가피할 뿐만 아니라 인명 피해가 발생한 만큼 경찰의 수사 뿐만 아니라 정치권에서도 다뤄질 수 있는 사안이다.
사고 발생 원인을 파악하기엔 충분하지 않은 사흘 만에 기자회견을 연 배경에는 이러한 상황을 감안한 것으로 책임 경영을 강조하기 위한 조치로 보인다. 여기에 현대차그룹의 엄격한 품질 경영 기조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세간의 평이 나온다.
주 대표는 당시 회견에서 “아직 책임소재를 논할 단계가 아니다”면서도 “책임질 부분이 있으면 책임지겠다”고 말했다. 또 “안전과 품질은 최우선 존재가치”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건설업계에서는 이번 사고로 주 대표의 리더십이 시험대로 오른 것으로 보고 있다. 재무통이지만 건설업에 대한 경험과 노하우가 없는 대표가 취임 초기부터 마주한 위기를 어떻게 헤처나갈지 주목하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업황이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상황에서 재무전문가로서 위기를 극복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했을 것”이라면서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하면서 CFO가 아닌, CEO로서의 주 대표 리더십이 진정한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