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선이 3일 본투표만 남았다. 긴장은 그다지 높지 않다. 사흘 전에는 “판세 예측이 가능한 예외적 선거”라는 조선일보 편집국장의 사내 공지 글이 화제가 됐다. 보수의 본산, 조선일보도 1강(이재명)-1중(김문수)-1약(이준석)을 기정사실화한 것이다. 이명박·박근혜·윤석열이 대승한 낙동강(PK)이 지금은 최대 격전지다. 22일의 공식선거운동 말미, 김문수는 가는 곳마다 ‘큰절 사과’ 하고, 이준석이 잠 줄여 ‘무박(無泊) 선거’ 해도, 이따금 들려오는 판세는 떨림이 없다.
어제오늘에 이 판이 갈렸는가. 아니다. 윤석열이 평지풍파 일으킨 12·3 내란부터다. 주권자의 가슴속 멍울도 그날부터다. 국민의힘이 빳빳이 고개 들 수 없는 조기 대선, 그 ‘1중’의 얼굴만 가장 늦게 김문수로 결정됐을 뿐이다. 새벽 3시 한덕수로 당 후보를 바꿔친 친윤계의 막장극이 당원투표로 뒤집힌 그날이다. 김문수는 지금도 왔다갔다 한다. 불법계엄 사과하면서 헌재의 만장일치 탄핵을 비난한다. 내란이란 것도, 극우 전광훈과의 인연도 뭉갠다. ‘탄핵의 강’을 못 넘은 그 어정쩡함은 태생적이다. 표의 셈법도 보인다. 이준석까지 언어 성폭력으로 뭇매 맞더니, 단일화 밀당하고 부정선거만 좇다 보수의 대선은 끝났다. 부정선거 감시자였을 게다. 동네 사전투표소 건물 모퉁이에서 출입자 세는 사람을 보고, ‘저게 맞을까’ 웃음이 나왔다.
2일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이 마지막 출근을 했다. 김건희 특혜 수사 지휘자다. 닷새 전 ‘2인 방통위’ 김태규 부위원장이 사표 냈고, 그 앞엔 ‘민원 사주’ 류희림 방심위원장이 사의 표명 후 병가를 연장했다. 수사·감찰 받기 전, 난파 정부에서 뛰어내리는 ‘윤석열들’이다. 일패도지(一敗塗地)가 사람뿐인가. 감사원이 대통령 관저를 이제서야 현장조사한다. 내란 비화폰·국무회의 영상이 이제 압수되고, 이상행동 잡힌 한덕수·최상목·이상민이 이제 출국금지됐다. 정치검찰이 1년7개월째 ‘명예훼손’으로 얽으려 한 경향신문 윤석열 대선 후보 검증 보도가 이제 무혐의 나고, 육사는 홍범도 흉상 철거를 이제 멈췄다. 권력이 기울자, 관가엔 먼저 눕는 줄사표와 늑장 조치가 끝없다.
내란 단죄도, 김건희의 디올백·다이아목걸이·샤넬백 행방도, 억울하게 죽은 채 상병의 해원(解寃)도 특검이 끝내야 한다. 입 열지 않는 ‘계엄 비선’ 노상원의 위험천만한 수첩도, 지귀연 재판부와 심우정 검찰이 왜 윤석열을 풀어줬는지도 밝혀야 한다. 빠르게 관용 없이 거악의 중심 걷어내고, 문제투성이 검찰은 또 고쳐 쓰려 힘 싣지 말아야 한다. 이 모든 진실이 모일 종착점은 내란 수괴다. 한강에서 개 산책하고, 부정선거 다큐 관람하고, 대선까지 뛰어든 윤석열의 재구속이다. 내란은 끝나지 않았다.
숙제가 내란뿐인가. 새 대통령이 먼저 받아들 ‘독이 든 성배’는 따로 있다. 망가진 경제와 민생, 2년간 90조원이 세수펑크 난 재정이다. 1분기 역성장한 나라는 4월 생산·소비·투자, 5월 수출이 다 뒷걸음쳤다. 구직과 진학 준비 없이 쉬는 청년도 50만명을 넘었다. 쌍봉형 빈곤, 청년은 지갑에 돈이 없고 노인은 지갑을 열지 않는단다. 바닥 예측도 어려운 내수·저성장 위기다. 민주주의가 벼랑에 서지 않도록 불평등, 뒤처진 AI, 꺼진 성장동력, 인구·지역소멸·기후·에너지 위기를 반전시켜야 한다. 이름과 엇간 인권위·진실화해위·국민권익위, 뉴라이트 수장이 똬리 튼 역사·교육기관도 원위치해야 한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이 국난 속에서도, 최종 의사결정권자는 국민이었다. 대통령이 보낸 계엄군을 막은 것도, 윤석열의 한남동 요새를 무너뜨린 것도, 만장일치 헌재 파면을 이끈 것도 주권자였다. 더하면, 조희대 대법원의 대선 앞 정치개입을 막은 것도 성난 여론이다. 내란 수괴가 지지한 보수후보 단일화가 ‘ㄷ’자도 못 넘고, ‘1+1’이 ‘2’가 못됨을 일깨운 것도 민심이다. 정치인이 정치하는 듯해도, 큰 정치는 국민이 한다. 3년 만에 대통령을 다시 뽑는다. 투표해야, 국민이 이긴다. 투표해야, 나라가 정상화된다. 그 힘으로, 대선 후보들이 약속한 대로, 낡고 좁은 헌법 고쳐 7공화국을 열어야 한다.
내 휴대폰을 거슬러가면, 윤석열이 국회에서 탄핵소추된 12월14일 저녁, 경향신문 호외 들고 파안대소하는 시민들이 보인다. 저 분노와 갈구를 누가 꺾을 수 있는가. 내란에서 대선까지 6개월을 되돌아본 글, 어찌 맺을까. 윤석열이 파면된 다음날 4월5일자 경향신문 1면을 옮긴다. 단 15자의 굵은 글씨였다. ‘끝내, 시민이 이겼다 다시, 민주주의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