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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오를 느끼고 불태우는 일은 본래 증오를 자극했던 사건보다 훨씬 더 오래 지속된다. 증오는 점차 몸집을 키우며, 오랫동안 눈에 띄지 않게 잠복한다. 말하자면 증오는 당사자의 속을 꾸준히 갉아먹는다. (···) 분노와는 다르게 증오의 분출은 자신의 감정을 푸는 것보다 증오 대상을 단호하게 파괴하려는 데 치중한다. 증오는 거듭 타오를 뿐, 사라지지 않는다.
-『모든 것을 파괴하는 어두운 열정: 증오의 역습』 중에서.
오스트리아 정신과 의사인 라인하르트 할러가 “인간의 감정 중 가장 파괴적이고 위협적인 감정”(아리스토텔레스)인 ‘증오’를 다각도에서 고찰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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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눈길을 끄는 대목은 ‘증오 전파자들의 세뇌 방식’. 주로 종교 지도자와 세속의 정치가인 이들은 선동적인 말과 글로 증오에 불을 지르고 거리낌 없이 폭력을 조장한다. “끊임없는 구호로 부정적 생각 심어주기. 개인이 자신의 위상을 의심하고 상대화하는 것을 차단하기. 증오 대상과 그룹에 잘못 전가하기. 모든 공감의 거부. 증오의 합리화와 찬미.” 이 대목에서 거리에 증오가 넘쳐나는 오늘 우리 현실이 겹쳐진다.
로맹 롤랑은 “증오가 내 심장을 채운다면, 다른 모든 것은 사라진다”고 했다.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로 인해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너의 심연을 오랫동안 들여다보라! 그러면 심연도 너를 응시할 것이다”라는 니체의 말은 증오에 증오로 답하는 증오의 연쇄 고리를 깨라는 유명한 잠언이다.
저자는 “증오를 제압하는 가장 효과적이면서도 고결한 방법은 용서”라고 결론 내린다. 나치 정권의 폭압에서 살아남은 경험을 책으로 쓰고 강연한 유대인 여성 잉게 아우어바허의 말도 소개한다. “나의 간절한 소망은 모든 사람의 화해”라고 외쳤던 그는 독일 전역 학교에서 강연할 때마다 똑같은 말로 마무리했다. “나는 증오하려고 살아남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