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골목 속 따뜻한 온기와 차가운 고독이…

2024-10-09

사진작가 이길화 개인전

거리 풍경 촬영 사진 20여점 전시

뇌병변 장애 있지만 연세대 입학

사진 공부 2년만에 賞도 여러번

세월의 무게가 켜켜이 쌓인 낡고 오래된 골목 앞에 사진가 이길화의 발걸음이 멈춘다. 때때로 사람들의 시선이 의미 없이 스쳐가는 비루한 풍경과도 마주한다. 그가 “찰칵!”하고 카메라 셔터를 누르면, 비루한 풍경들은 일순간 따스함으로 치환된다. 그는 비루함에 따사로움을 투영하는 재능을 타고났다. 낡고, 늙고, 소외된 피사체들이 그의 앵글에선 사랑받는 따뜻한 존재로 거듭나기 때문이다.

이길화 개인전이 동제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그의 개인전 제목은 ‘길, 거리’. 길을 걸으며 만난 거리의 풍경을 촬영한 사진 20여점이 걸렸다. 따지고 보면 길이나 거리는 지극히 실용적인 단어들이다. 거리는 삶의 현장, 길은 이동을 위한 공간이다. 하지만 많은 예술가들은 길이나 거리를 실용의 대상보다 예술의 대상으로 바라보며 환호했다. 그들이 길이나 거리에서 발견한 가치는 ‘인간의 온기’였다.

이길화의 피사체는 길과 거리다. 여느 예술가들처럼 그도 길과 거리에서 ‘사람들의 온기’를 찾는다. 하지만 그의 눈길이 머무는 곳은 오래된 후미진 골목이나 거리. 그는 오래된 골목에서 화려하고 세련된 도시풍경에서 찾을 수 없는 소소하고 순박한 온기를 발견한다. 오래되어 고즈넉한 일본의 교토 거리나 재개발 직전의 낡은 주택가 골목, 손때 묻은 물건을 사고파는 벼룩시장 풍경에서 그가 쾌재를 부르는 것도 길과 골목을 타고 그에게로 다다르는 사람들의 온기 때문이다.

따스한 정서와 함께 그의 사진 속 서정은 또 있다. 바로 ‘스산한 고독’이다. 이길화의 풍경에는 따뜻함과 고독이 공존한다. 작가는 삶의 무게를 어깨에 메고 자전거를 타고 가는 남자나 인간의 공간에서 몸을 숨기며 세상을 바라보는 고양이의 시선에 따뜻한 위로와 스산한 고독을 교차한다.

그런데 따뜻한 온기와 차가운 고독은 상반된 정서다. 젊디젊은 그가 어떻게 이질적인 두 가지의 감정을 수용하게 됐을까? 단초는 그의 개인사에 있다. 그는 초등학교 때 뇌손상으로 뇌병변 장애를 입었다. 오른쪽 수족 마비가 찾아왔고,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아야 하는 운명이 됐다. 그러나 그는 강했고, 장애에 낙담하지 않았다. 학창 시절 공부를 곧잘 해 연세대 생명공학과에 진학하는 기염을 토했다. 하지만 전공과목에 흥미를 갖지 못해 중퇴라는 결단을 내려야 했다

각고의 노력 끝에 비장애인과 다르지 않은 성장기를 보냈지만 그가 겪었을 세상의 편견과 선입견은 미루어 짐작이 된다. 현장에서 사진을 찍는 지금도 그는 사람들의 불편한 시선을 느낀다.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편견은 단단했던 그의 마음에 생채기를 남기기 마련이고, 고독은 그의 주위를 맴돌았을 것이다. 그 인생역정이 소외된 것에 대한 애정과 떨쳐버릴 수 없는 고독감으로 표출됐다.

그의 풍경에는 선(線)적인 요소들이 유난히 부각된다. 무질서한 골목에서 중심이 되는 대상을 선정하는데, 그 기준이 선이다. 복잡하게 얽혀있는 건물과 장치들이 중심을 잡고 있는데, 그 건물은 골목 풍경을 하나의 구조체로 연결한다. 그렇게 선과 선으로 이어진 결구는 그림의 그것을 닮아있다. 이는 그의 사진을 그림과 사진의 경계에 놓는 배경이다.

주어지는 풍경을 선을 중심으로 재구성하는 역량은 뇌병변을 앓기 전 그림을 좋아했던 그의 이력과 무관치 않다. 장애를 얻기 전까지 그는 그림을 곧잘 그렸다. 하지만 뇌병변으로 장애를 입자 그림을 그리는 것이 원활하지 못했다. 결국 그림으로부터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때 만난 것이 카메라였다. “어머니가 초등학교 졸업 선물로 카메라를 사 주셨어요. 어디를 가든 카메라를 가지고 다니며 사진을 찍었죠.” 카메라는 그의 예술적인 감성을 채워주는 좋은 도구가 됐고,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 본격적으로 사진을 시작하는 계기가 됐다.

그의 평범하지 못했던 그의 여정은 그를 특별한 인문학적 감수성의 소유자로 만들었다. 독학으로 사진을 공부했지만 그의 남다른 시선은 호평을 받고 있다. 그는 2023 ND Awards, 2024 PX3 Paris Photo Awards, 2024 Fine Art Photography Awards를 수상했다. 사진 활동을 시작한지 2년여만의 성과여서 향후 그의 사진에 거는 기대는 크다. 전시는 14일까지.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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