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계엄 관련 공소장 읽는 밤

2025-02-06

불발탄이다. 그래도 폭탄은 폭탄이다. 낙진의 후과가 만만찮은 계엄 폭탄. 경계할 계(戒), 엄할 엄(嚴). 계엄이라는 다소 괴이쩍은 이름의 이 짐승을 또 만날 줄이야. 그 옛날 막다른 골목에서 된통 물린 기억이 왈칵 쏟아져 나왔다. 갑진 12월3일. 그날 밤의 내란과 이후 전개된 사태에 일상을 온전히 회복하기가 힘든 이웃이 많다. 수괴(首魁), 체포(逮捕), 탄핵(彈劾), 구속(拘束) 등등 육법전서에나 어울리는 말들이 느닷없이 뛰쳐나와 실생활을 휘젓는다. 사전 속에서는 얌전하지만 신문이나 방송에서는 사납기 그지없는 단어들.

법이라는 것은 누구에겐 밧줄, 누군가에겐 기술, 또 누군가에겐 전부겠지만 그 어떤 이에겐 어쩌면 있으나마나한 것. 발길 따라 걷는 대로 걷고, 살아야 하는 대로 사는 이에게 그건 저기 낡은 새끼줄 울타리에 불과한 것. 작위든 부작위든 헛갈리는 말은 전문가에게 맡기고 불혹(不惑)의 삶을 일상으로 여기면서 대부분 그렇게 살고 있다. 굳이 나, 여기에서, 이렇게, 살아간다고 외지 않아도 그냥 살아지는 상태. 말하자면 산다는 것의 명인들, 길 위에서 길 따라 흘러 다니는 길의 도사들.

퍽 다행히 법에 밥줄을 걸지 않았다. 또한 다행히 시나 소설에 손수건만 한 취미를 붙이고 더러 읽는다. 문자란 이런 데 소용되는 재료인 줄로만 알았다. 그제 언론에 공개된 어느 공소장 전문을 보았다. 법의 문외한으로서 처음 접한 법률 문서. 읽어내기가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땡땡땡으로 처리한 등장인물들의 어지러운 행각을 말 감옥에 이렇게 가둬놨다. “피고인은 1979. 2.경 A고등학교를 제8회로 졸업하였고, (…) 무장 군인 1605명과 경찰청 및 서울특별시경찰청, 경기남부경찰청 등에 소속된 경찰관 약 3790명 등을 동원하여, 국회, 선거관리위원회, C당 당사, 여론조사E 등을 점거 출입 통제하거나 체포 구금 압수수색하는 등의 방법으로 강압하여 한 지역의 평온을 해하는 폭동을 일으켰다.”

이미지가 넘쳐나는 시대. 네모난 모니터가 세계를 조각조각 분할하고 있다. 범죄자의 발호를 오랏줄로 제압하듯이, 죄를 꽁꽁 묶는 것은 영상이 아니라 결국 문자다. 범법을 포박하는 문장의 힘. 내 고난의 독후감 끝에 씁쓸한 자조를 사족처럼 붙여둔다. 어느 영화의 대사처럼 법에 무슨 죄 있겠나. 소설 같은 이 공소장에 동원된 단어에 무슨 잘못 묻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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