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반 아파서" "설사 해서"…또 이런 환자 몰린 연휴 응급실

2025-10-09

"가렵지는 않은데 혹시 알레르기 아닌가 싶어서…"

추석 연휴 엿새째인 지난 8일 오후 3시쯤 수도권의 한 권역응급의료센터. '최상위 응급실'로 분류되는 이곳 진찰실에 들어선 70대 남성은 응급의학과 A교수를 마주 본 채 증상을 설명했다. 일주일 전인 지난 1일 자기공명영상(MRI)을 찍었다는 그는 이날 "조영제 알레르기가 생긴 것 같다"며 응급실을 찾았다. 양쪽 팔에 생긴 갈색 반점 때문이었다.

A교수는 "두드러기나 가려움이 있느냐"고 물었고, 환자는 "없다"고 답했다. 동행한 배우자는 "연휴라 문 여는 병원도 없고, (연휴가 끝나는) 금요일까지 기다릴 수 없어서 이렇게 둬도 되나 싶다"며 걱정했다. A교수는 "MRI 촬영 당시 이상이 없다면 조영제와 무관하다"며 "당장 가렵지 않고 응급 증상이 없는데 드릴 약이 없다. 금요일에 피부과 진료를 받아보라"고 안내했다. '1분 1초'가 급한 응급실에서 이 환자를 진료하는 데 10분 넘게 걸렸다.

이날 오후 내내 이 병원 응급실은 이런 경증 환자들로 붐볐다. 정부는 연휴 기간 하루 평균 8800곳 병·의원이 문을 연다고 안내하며 "몸이 아프면 문 여는 동네 병·의원이나 작은 응급실(지역응급의료기관·응급의료시설)을 찾아달라"고 당부했지만, 무작정 대형병원 응급실을 찾는 이들이 많았다. A교수는 "경증 환자가 몰리면 다른 환자 진료가 늦어져 정말 응급한 환자 진료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그가 이날 오후 1시부터 6시까지 진료한 환자 25명 중 119구급대를 통해 이송된 환자 1명을 제외하면 대부분 설사나 감기 등 비교적 가벼운 증상으로 걸어들어온 환자들이었다. 이들 중엔 '한국형 중증도 분류(KTAS)' 1~2단계(소생·긴급)에 해당하는 환자는 없었다. A교수는 "문 여는 병원이 많지 않은 명절이라서 경증 환자가 평소보다 더 늘었다"라고 설명했다.

오후 2시 27분, 코피가 멎지 않는다며 60대 여성이 찾아왔다. 그는 혈압을 걱정하며 응급실을 찾았다. 진찰실 밖에서 지혈 처치를 받은 그에게 A 교수는 "코피는 혈압과 상관없다. 건조해서 그렇다"고 설명했다. 오후 3시 25분엔 콧물·구토 등 감기 증상을 호소하는 20대 여성이 진찰실에 들어섰다. A교수는 수액을 처방했다. 환자들은 이날 "골반이 아프다" "설사가 멈추지 않는다" "통증이 심하다"며 응급실 문을 두드렸다.

진찰실 밖 환자·보호자 대기실 30석 중 22석이 찼다. 간호사들은 증상과 기저질환 여부 등을 확인하며 이들을 중증도 순으로 분류해 A교수에게 알렸다. "대기가 길어질 수 있다"는 안내에도 기다리는 환자는 줄지 않았다. 기침·가래 증상 등으로 온 60대 여성은 2시간 30분 기다린 끝에 오후 5시 35분쯤 진료를 받았다. A교수는 화장실에 갈 틈도 없이 환자를 살폈다.

중증 환자도 있었다. 119구급대로 긴급 이송된 한 50대 환자는 의식이 없어 중증 구역으로 곧바로 옮겨졌다. 패혈증으로 의심되는 상황이었다. 전공의·간호사 등 의료진 5명이 동시에 달라붙어 기도 삽관, 중심 정맥관 삽입 등 각종 응급 처치를 이어갔다. A교수는 "응급실 혼잡도는 이런 중증 환자가 몇 명이냐에 따라 달라진다"며 "이런 환자 진료를 위해 아프다고 무작정 대형 응급실을 찾기보다 1·2차 병원 등 다른 대안을 고려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병원 선택권이 사실상 환자에게 있는 만큼 환자들이 응급실 역할을 구분해달라는 당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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