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버지의 시간
사라 블래퍼 허디 지음
김민욱 옮김
에이도스
지난 2014년 저명한 진화인류학자 사라 블래퍼 허디는 첫 손자 덕분에 신기한 광경을 목격했다. 사위가 24시간 내내 붙어서 아기를 돌보고 기저귀를 갈아주는 모습을 본 것이다. 그녀가 자라난 1950년대 미국 텍사스에서는 전혀 볼 수 없던 행동이었다.
때마침 양육에 참여하는 아버지들의 뇌에서 부위별로 회백질의 양이 다르게 변하더라는 실험 결과(미국 덴버대 김필영 교수의 연구)도 읽었다. 이를 계기로 허디는 그때까지 집중하던 사람과 영장류들의 '어머니'에서 '아버지'까지로 연구 주제를 넓혔다. 그간의 연구와 탐구를 담은 『아버지의 시간』이 지난해 5월 영문판 출간 이후 1년도 못 미쳐 번역판이 나왔다.
학계에서 허디는 히말라야 산록에 서식하는 랑구르 원숭이들에 나타나는 영아살해 행동이 과밀 상태에서 일어나는 병리적 행동이 아니라 수컷들의 번식전략이라는 1977년의 주장으로 주목받았다. 대중적으로는 『어머니의 탄생』(1999년, 번역판 2010년)에서 근원적인 모성 ‘본능’이라고 우상화되었던 것들이 실은 여러 적응적 행동들의 일부만을 추렸을 뿐이란 점을 설득력 있게 보여주며 유명해졌다.

『아버지의 시간』을 무리하게 두 줄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다. 인간 남성은 아기와 친밀하게 지내는 시간이 늘수록, 여러 변화가 뇌와 신체에서 일어난다. 이는 현존 인류가 지닌 생물학적 특성 중 하나다.
하지만 이런 요약이 전부일 리는 없다. 뒷받침하는 관찰과 실험들도 풍부하고, 풍기는 뉘앙스나 독자가 풀이할 수 있는 방향도 여럿이다. 일단 생물학적 자식이냐의 여부보다는, 아기에 바짝 붙어서 돌보는 시간이 인간 남성 개체의 신체 변화를 좌우하는 가장 두드러진 변수로 보인다. 제목에 "시간"을 강조한 이유 중 하나라고 한다. 그렇다고 사회문화적인 요인이 개입하지 않을 리 없다. 개인차도 크다. 자기 자식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방치하는 남성도 있고, 아기만 보면 반색하고 주의를 기울이는 남성도 있다.
사실 현생 인류는 독보적으로 사회적인 생물 종이다. 무리 생활을 하고 무리 내 지위와 자원을 다툰다는 점에서 사회적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그 정도는 무리 생활을 하는 다른 동물에서도 관찰된다. 인류는 구석기시대 초기부터 다른 개체의 도움을 받아야만 무사히 신생아를 출산할 수 있었다. 허디는 전작인 『어머니,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서 보조 양육자나 대체 양육자의 참여 없이는 현생 인류 집단의 존속이 불가능했다는 점을 보여줬다. 영아가 매개가 되어 인류가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발달했다고 풀이할 수도 있다.

흔히 자연적이니 마땅히 따라야 한다는 태도를 자연주의적 오류라고 한다. 허디는 『어머니의 탄생』에서 모성에 대한 자연주의적 오류를 붕괴시켰다. 모성은 언제나 헌신적이라는 명제가 자연적으로는 성립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줬다. 『아버지의 시간』은 남성이 아기를 돌보는 일도 자연적이니 마땅히 남성도 육아에 더 참여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읽히기 쉽다. 다른 동물 종에서도 수컷이 양육하는 사례들이 있다고 애써 강조하는 모습을 보면 그렇다.
학계 권위자도 우왕좌왕하는 것일까? 그럴 가능성도 있지만 달리 읽는 방법도 있다. 어머니의 헌신을 강요하지도 말고 우유병을 든 아버지를 이상하게 쳐다보지도 말자. 우리가 품은 모성/부성 상은 자연적인 것과 문화적인 것이 뒤섞여 있는 것이니 무작정 답습할 바도 무조건 거부할 바도 아니다. 통념에 안 맞는 사례들에 마음을 열면 충분하다. 허디조차도 대형동물 사냥에 여성이 참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여겼지만, 2010년대 후반부터 고고학자들은 여성 엘리트 사냥꾼의 무덤인 듯한 유적들을 여러 대륙에서 발견하기 시작했다. 원제 Father Time: A Natural History of Men and Babi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