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 금융 질서는 지금 스테이블 코인을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미국, 일본, 유럽 등 주요국은 이미 스테이블 코인을 차세대 금융 인프라로 규정하고 법·제도·기술표준을 동시에 마련하고 있다.
미국은 준비금 요건과 발행사 규제를 토대로 디지털 달러 시대의 기반을 구축하고 있고, 일본은 은행·신탁사·자금이동업자만 스테이블 코인을 발행할 수 있도록 체계를 설계했다. 유럽연합(EU)은 포괄적 규제(MiCA)를 통해 시장 규율을 정립했다.
우리나라도 최근 국회와 금융당국을 중심으로 스테이블 코인 관련 입법 논의를 본격화하고 있다. 글로벌 흐름에 뒤처지지 않기 위한 첫 단계라는 점에서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국내 논의 상당 부분은 여전히 “누가, 어떻게 스테이블 코인을 발행할 것인가”에 맞춰져 있다. 발행 구조는 중요한 출발점이지만, 스테이블 코인이 실제 금융 인프라에서 기능하기 위해서는 발행보다 전송·유통·감독 체계가 중요하다.
스테이블 코인은 단순한 가치 저장 수단이 아니다. 실제 효용은 이동·결제·환매 과정에서 발생하고, 기술적·운영상의 위험도 대부분 전송·유통 단계에서 드러난다. 통화량 급증, 대규모 환매 요구, 이상 거래 패턴, 자금세탁 위험 등은 대부분 유통 과정에서 발생한다.
스테이블 코인이 금융 시스템 속에서 '통화'처럼 기능하기 시작하면, 이를 모니터링하고 통제할 수 있는 기술적 기반이 반드시 필요하다. 즉, 스테이블 코인의 안정성은 발행보다 전송망의 설계 수준에 의해 결정된다. 전송 인프라는 크게 관제 시스템과 통제 시스템으로 나눌 수 있다.
관제 시스템은 전체 통화량을 파악하고, 갑작스러운 유동성 변화나 이상 거래를 탐지하며, 시장 전반의 위험 요인을 실시간 관찰하는 역할을 한다. 통제 시스템은 AML·KYC와의 연동, 지갑 동결, 지연 출금, 소유권 변경, 상속·압류 등 법적 요구사항을 기술적으로 구현하는 영역이다. 전통 금융에서는 이들 기능이 기본 안전장치로 여겨진다. 반면 블록체인은 탈중앙화 철학 때문에 이러한 통제 기능을 배제해왔고, 그 결과 현실 세계에서 적용할 때 규제·안전성 요구와 충돌하는 면이 있었다. 실제로 실사용을 전제로 한다면 탈중앙화의 이상만으로는 소비자 보호와 금융 안정성을 담보하기 어렵다.
여기서 최근 글로벌 금융권에서 주목받는 개념이 '소버린 체인(Sovereign Chain)'이다. 소버린 체인은 기존 퍼블릭 체인의 개방성과 투명성을 유지하면서도, 국가와 규제기관이 요구하는 감독·통제 기능을 기술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 구조를 의미한다. 따라서 발행 논의 못지않게 한국형 스테이블 코인의 전송 표준을 설계하는 일 또한 중요한 과제다. 전송 표준이란 특정 블록체인을 선택하거나 특정 기술 방식을 강제하자는 것이 아니라, 한국 금융 환경에 필요한 요소를 정의하고 어떤 기술에도 적용 가능한 최소한의 규격을 만드는 과정이다.
전송 표준에는 몇 가지 핵심 요소가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 첫째, 기본 전송 규격(프로토콜)이다. 지갑 간 이체 방식, 수수료 구조, 오류 처리, 지연 출금 메커니즘 등은 국가의 금융 시스템과 호환 가능한 형태로 정의되어야 한다. 둘째, 규제 기술(RegTech)의 내재화다. 화폐로서의 기본 기능인 자율적 P2P 거래를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AML 자동 검증, KYC 연동 구조, 위험 거래 모니터링 API 등을 표준화해야 한다. 셋째, 소비자 보호 기능의 표준화다. 사기 피해 복구 절차에 필요한 지갑 동결, 입·출금 지연, 소유자 변경 기능 등은 금융 소비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필수 요소다. 넷째, 금융기관과의 연동을 위한 인터페이스 규격이다. 은행, 증권사, 전자지급결제업자, 핀테크 플랫폼 간 상호 연계성을 확보해야 스테이블 코인이 생활 금융으로 확장될 수 있다.
한국형 스테이블 코인의 도입은 단순한 암호자산 프로젝트가 아니라 디지털 시대의 금융 인프라를 재정의하는 국가적 과제다. 세계 주요국이 이미 발행 규칙과 전송·감독 체계를 병행해 정비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우리도 발행 주체 논의에만 머무르지 말고 전송 표준 마련에 착수해야 한다.
이제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변화에 소극적으로 대응해 뒤처질 것인지, 혹은 미래 금융 인프라의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 필요한 준비를 지금부터 차분하게 시작할 것인지. 보다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는 디지털 금융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해, 한국형 스테이블 코인의 전송 표준 마련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핵심 과제다.
장종철 컴투스홀딩스 상무 zhooi@com2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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