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사규는 노무 규정이 아니다

2025-11-26

(조세금융신문=함광진 행정사) 많은 중소기업 대표들이 ‘사규’라는 말을 들으면 가장 먼저 인사, 근로시간, 징계 절차 등을 떠올린다.

실제 상담 현장에서도 “우리 회사는 직원이 몇 명 안 되니까 사규는 필요 없어요”, “노무사한테 인사규정은 이미 받아놨어요”라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이처럼 사규를 ‘직원 관리용 문서’로만 인식하다 보니, 대부분의 회사에서 사규는 ‘노무 이슈가 생길 때만 꺼내는 문서’가 되어버렸다. 결국 사규가 회사의 경영, 의사결정, 리스크 관리에 기여하지 못하고 ‘형식적인 서류’로 전락하는 경우가 많다.

사규는 ‘시스템의 문제’를 해결하는 도구

사규는 노무관리 문서가 아니다. 사규는 회사의 운영 질서를 제도화한 경영 인프라다. 기업이 작을 때는 대표의 판단과 말로도 충분히 운영이 가능하지만, 조직이 커질수록 ‘말로 하는 경영’은 불확실성과 혼란을 낳는다. 사규는 이런 불확실성을 제거하는 장치다.

예를 들어, 직원이 회사 물품을 개인적으로 사용했을 때 어떤 절차로 처리할 것인가? 외부와 계약할 때 누가 결재권을 가지며, 어떤 서류가 필요할 것인가? 회계 처리나 비용 집행 시 어떤 기준을 적용할 것인가?

이 모든 것이 노무 문제가 아니라 경영 시스템의 문제이며, 이를 정리한 문서가 바로 ‘사규’다. 사규는 경영자의 철학을 제도로 옮기고, 조직이 일관된 기준으로 움직이게 만드는 보이지 않는 ‘설계도’다.

그런데 고객과 상담을 하다 보면, 사규의 필요성을 이야기할 때마다 대표님들이 공통적으로 내놓는 반응이 있다. “우리 회사는 작아서 굳이 사규까지 만들 필요는 없다”, “직원들끼리 신뢰로 움직이는데 그런 문서가 꼭 필요한가”, “규정이 많아지면 오히려 회사가 경직되지 않겠느냐”는 말들이다.

이런 반응은 모두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작은 조직은 매출과 현장 대응이 우선이기 때문에, 사규 같은 제도적 장치는 ‘지금 당장 필요한 일’로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회사가 작을수록 사규의 부재는 더 큰 위험으로 돌아온다. 대표의 판단 하나가 회사 전체를 좌우하기 때문에, 기준이 없으면 모든 책임이 대표 개인에게 집중된다.

“신뢰로 움직이는 조직”이라는 말은 자랑이지만, 사람은 바뀌고 기억은 달라진다. 신뢰만으로 운영되는 조직은 결국 기억과 감정에 의존하는 경영으로 흐르기 쉽다.

사규는 신뢰를 대체하기 위한 장치가 아니라, 신뢰를 보호하고 지속시키기 위한 약속이다. 업무 담당자가 바뀌어도 동일한 기준으로 소통할 수 있는 구조가 바로 사규에서 비롯된다.

규정이 많으면 유연성이 떨어진다는 우려도 있지만, 사규는 복잡한 절차를 늘리는 문서가 아니다. 오히려 ‘왜 그렇게 해야 하는가’라는 원칙을 명확히 함으로써 판단 속도를 높이고, 불필요한 혼선을 줄인다.

즉, 잘 만든 사규는 조직을 묶는 틀이 아니라 대표를 자유롭게 하는 시스템이다. 결국 사규는 통제를 위한 문서가 아니라, 대표의 철학과 경영 원칙을 제도적 언어로 옮겨 놓은 ‘경영의 언어’이며, 그 언어가 바로 조직의 일관성과 신뢰를 지켜주는 힘이 된다.

‘경영 중심 사규’로 전환하라

기업이 사규를 새롭게 정의하려면 사규를 ‘리스크 관리’와 ‘조직 운영 효율성’의 관점에서 다시 설계해야 한다. 다음의 세 가지 대안을 제안한다.

첫째, 사규의 범위를 ‘경영 전반’으로 확장하여야 한다. 인사‧노무 규정뿐 아니라, 회계관리, 자산관리, 고객응대, 성과평가, 계약관리 등으로 영역을 확장해야 한다. 이를 통해 회사 내 모든 의사결정의 기준이 문서로 남고, 누가 무엇을 어떻게 처리할지 명확해진다.

둘째, 사규를 ‘대표의 생각을 제도화하는 문서’로 설계하여야 한다. 사규는 경영자의 의사결정 방식을 기록한 ‘경영 매뉴얼’이다. “우리 회사는 이렇게 일한다”는 문장을 제도화하면, 사람 중심의 경영이 아니라, 시스템 중심의 경영으로 전환된다.

셋째, 사규를 ‘교육과 소통의 도구’로 활용하여야 한다. 사규는 직원 통제용 문서가 아니라, 업무 표준을 공유하는 교본이다. 신규 직원 교육 시 사규를 기반으로 운영 원칙을 설명하고, 사규를 통해 ‘우리 조직이 일하는 방식’을 공유하면 불필요한 갈등이 줄어든다.

사규는 ‘법의 언어로 표현한 경영 철학’이다

사규는 단순히 규칙을 정하는 문서가 아니라, 회사의 정신을 담는 ‘경영의 언어’다. 대표의 말, 직원의 습관, 현장의 경험을 제도의 언어로 옮겨 놓는 것. 그것이 바로 사규의 본질이다.

회사가 커질수록, 그리고 책임이 늘어날수록, 경영은 말보다 문서로 작동해야 한다. 사규는 그 문서 중에서도 가장 기본이 되는 기업 내부의 법률이다. 이제 ‘노무 사규’의 틀을 넘어, ‘경영 사규’로 회사의 질서를 세워야 할 때다.

[프로필] 함광진 행정사

•CS H&L 행정사 사무소 대표

•인천광역시청 재정계획심의위원

•사회적기업진흥원 전문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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