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법 기대했는데” 다음달 시행 앞두고…의료현장 곳곳서 파열음

2025-05-19

일명 'PA(Physician Assistant)'로 불리는 진료지원인력을 합법화하는 간호법 시행을 앞두고 간호사사회 내부는 물론, 보건의료직역 간 파열음이 곳곳에서 나온다. 환자의 안전과 직결되는 사안임에도 하위법령에서 간호사 진료지원 업무의 세부 범위는 커녕 분야별 자격 기준과 업무 교육을 담당할 주체를 두고 이견이 제기되고 있다. 체외순환사 등 PA 간호사 합법화로 인해 기존 업무를 침해당할 위기에 놓인 여타 보건의료직역은 물론, 환자 단체들 사이에서도 반발이 높다.

대한간호협회(간협)는 19일 서울 중구 협회 서울연수원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가 마련 중인 '진료지원 업무 수행 규칙안'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다. 오는 6월 4일까지 입법예고 중인 해당 규칙안이 전담간호사, 즉 PA의 실태와 전문성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신경림 대한간호협회장은 "간호법 제정으로 진료지원 업무 제도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전담간호사 교육기관을 의사대표 단체를 포함한 공급자 단체, 의료기관 등 광범위하게 펼쳐주고는 각자 마련해 정부에 신청하면 각자 알아서 수행할 수 있도록 했다"며 "이는 그동안 의사 부족을 이유로 간호사에게 과도한 진료지원업무 떠넘겨 온 현실을 방치한 채 그 교육마저 현장에 전가하려는 제도적 착취"라고 주장했다. 진료지원 업무의 교육 및 전담간호사 자격 부여 권한을 병원 등 일선 의료기관이나 대한의사협회, 대한병원협회 등 보건의료직능 단체에 일임해서는 안되며, 간협이 주체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협회는 현재 전국 3300여 개 의료기관에서 4만여 명의 간호사가 진료지원업무를 수행 중인 것으로 보고 있다. 이는 시범사업 참여 기관을 기준으로 정부가 발표한 1만7560명보다 2배 이상 많은 수준이다.

간협은 이들 대부분이 체계적인 교육과정 없이 현장 경험에만 의존하고 있어 환자 안전과 간호사의 전문성 확보에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며, 한발 앞서 '인정간호사 제도'를 시행 중인 일본 사례를 본따 간호사단체가 교육기관 지정·평가·운영을 총괄할 수 있도록 일임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간협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간호사 업무 관련 시범사업 참여 의료기관 151곳에서 전담간호사 2117명을 대상으로 '전담간호사 교육과정 운영기관 관리·운영체계' 2차 실태조사를 시행한 결과, 전체 응답자의 60%는 "병원 내 일대일 도제식 교육을 받았다"고 답했다. 당시 응답자의 52%는 "전담 간호사 교육 원내 지침이 없다"고 답했고, 심지어 37%는 "전담간호사 교육을 받지 못했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훈화 간협 정책전문위원은 "다른 기관에서 전담간호사 교육을 하지 말라는 게 아니다. 간협이 총괄 관리하겠다는 취지"라며 "지난해 간호사 업무 관련 시범사업을 하면서도 시범사업 참여 의료기관의 전담간호사 숫자만 파악할 뿐 진료지원업무 교육 유무나 지침 준수 여부 등을 전혀 파악하지 않던 복지부가 왜 교육기관 총괄 관리를 맡겠다고 나선 저의가 궁금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국민들의 안전과 간호사의 경력발전 체계를 마련하기 위해서라도 간협이 총괄 관리를 맡아야 한다"며 "현행 제도대로 시행될 경우 불법이던 진료지원 업무를 합법화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막겠다"고 강조했다.

간호법은 간호 인력의 수급, 전문성 향상과 이를 통한 간호 서비스의 질 제고를 통해 국민건강증진에 이바지한다는 취지로 지난해 9월 20일 제정돼 오는 6월 21일 시행될 예정이다. 간협은 정부안에 대한 항의 표시로 20일부터 세종시 보건복지부청사 앞에서 무기한 1인 시위를 하고, 26일부터 매주 대규모 집회를 열겠다고 예고했다.

본격 시행이 얼마 남지 않은 간호법 시행안에 대해 불만을 갖는 것은 비단 간호협회만이 아니다. 간협은 지난 4월 국회에서 열린 간호법 관련 정책토론회에서 전담간호사의 업무 분야를 중환자·호흡기·근골격·소화기·응급·수술·소아청소년·신생아집중·순환기·심혈관흉부·신경외과·피부배설·비뇨기·여성건강·마취통증·내과일반·외과일반· 재택 등 18개로 세분화해 이들의 전문성을 강화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한국전문간호사협회 등 이미 전문 분야가 있는 간호사 단체들은 반대하고 있다. 환자는 다양한 질환과 증상이 복합적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전담간호사의 분야가 과도하게 세분되면 유연하게 대처할 수 없다는 이유다. 간호사 면허 소지자로서 간호 실무 경력과 대학원 석사 과정 이수 후 시험에 합격해야 자격이 주어지는 전문간호사 제도와의 관계가 모호해질 우려도 제기된다.

그간 PA 의존도가 높았던 심장수술을 둘러싸고는 체외순환사들의 반발이 커지고 있다. 체외순환사란 말 그대로 환자의 심장을 일시적으로 멈추고 수술을 진행하거나 심장, 페 기능이 극도로 저하돼 제 기능을 하지 못할 때 환자 몸 밖에서의 혈액순환을 돕는 직군이다. 수술실, 응급실, 중환자실 등에서 전문의의 지시 감독 아래 에크모(ECMO) 같은 인공심폐장치 운영 등을 담당한다. 간호법 시행을 계기로 법적 지위를 부여받게 됐다는 기대감이 컸는데, 최근 간협이 PA 간호사 교육안에 신설한 ‘심혈관흉부 전담 간호사’ 항목에 체외순환 업무가 포함되며 논란이 커졌다. 환자의 생명을 다루는 고위험 기술인 만큼, 오랜 기간 숙련된 인력이 담당해야 하는데 간협이 제시한 교육시간과 실습내용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불거진 것이다. 체외순환사와 밀접하게 연관되는 흉부외과 전문의와 일부 환자들 사이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복지부는 오는 21일 간호법 공청회를 열고 간협을 비롯한 의료계 단체들의 의견을 수렴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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