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를 위한 곰과의 맞대면

2025-04-07

헌재의 판결문을 읽은 후 내 독서는 넉 달 만에 평정심을 찾았다. ‘옛 질서는 무너졌으되 새 질서는 도래하지 않은’ 상황에서 무엇이든 현실을 은유하는 거울처럼 읽혔는데, 이제는 새롭게 책들을 만날 준비가 됐다. 도서관에서 잔뜩 빌려온 신작 가운데 독특한 광휘를 발하는 나스타샤 마르탱의 『야수를 믿다』를 소개하고자 한다.

젊은 인류학자가 연구를 위해 러시아 숲속에 들어갔다가 곰의 공격을 받는다. 턱뼈가 으깨어지는 참변을 당했으나 등반용 얼음도끼로 간신히 곰을 물리치고 병원을 전전하며 살아남았다. 회복된 후 그녀가 한 일은 바로 그 숲으로, 연구하던 부족의 품으로 돌아온 것이다. 끔찍한 사고를 당했는데 왜 숲으로 돌아갔을까?

‘정면으로 닫히던 곰의 이빨, 부서진 내 턱, 내 머리, 입 안의 어둠, 불현듯 생각을 바꿔 끝내 나를 잡아먹지 않은 나의 곰을 생각한다.’

그녀는 ‘미에드카’, 에벤족의 말로 곰과의 조우에서 살아남은 사람, 그런 표식을 받은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다. 인류학자로서 연구대상이던 사람들에게 벌어진 일이 자신에게 일어난 것, 연구자에서 당사자가 된 사건은 그녀에게 끝없는 꿈과 사유를 선사한다. 병원에 후송됐을 때 그녀의 몸은 서구의 의사와 시베리아 곰이 대화하는 영역이 되었다. 꿰매고, 씻기고, 자르고, 다시 꿰매지면서 저자는 진정한 치유를 위해서는 ‘굴에 들어가는 곰처럼’ 숲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판단한다.

부족의 어머니는 말한다. “왜 곰이 너를 물었는지 알아? 곰은 자신을 바라보는 인간의 눈을 참지 못해. 그 안에서 반사되는 자신의 영혼을 보기 때문이야.” 영혼의 맞대면, 동물과 인간의 영혼이 서로를 마주 보았다는 놀라운 애니미즘이다. 곰은 인간의 눈 너머로 자신의 인간 영혼을 보고, 인간은 곰의 눈 너머로 자신의 동물 영혼을 보기라도 한 것일까?

인공지능 시대에 이러한 ‘전환성’은 충격적이고도 심오하다. 아름답고 치열한 문장에 힘입어 이 책은 새로운 세계, 놀라운 중간지대로 독자를 데려갈 것이다.

김성중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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