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난향의 ‘명월관’
이난향의 ‘명월관’ 디지털 에디션

‘남기고 싶은 이야기-명월관’의 디지털 에디션을 연재합니다. 일제강점기 조선 최고의 기생으로 손꼽혔던 이난향(1901~79)이 1970년 12월 25일부터 이듬해 1월 21일까지 중앙일보에 남긴 글입니다. 기생이 직접 남긴 기생의 역사이자 저잣거리의 풍속사, 독립투사부터 친일파까지 명월관을 드나들던 유력 인사들이 뒤얽힌 구한말 격동의 기록이기도 합니다. 후에 확인된 오류를 정정하고(본문에 녹색으로 표시) 여러 등장인물과 사건에 대한 설명을 추가해 더욱 풍부한 스토리로 다듬었습니다.
황토현 네거리에 있었던 명월관이 불타버렸다.
내 기억으로는 1918년으로 생각되는데(실제 화재는 1919년) 여러 군데 확인해보았으나 명월관이 불탄 해를 정확히 기억하는 분을 만나지 못했다.
그 당시만 해도 대부분이 낮은 기와집뿐이었기 때문에 명월관은 우뚝 솟아 보였는데, 뜻하지 않은 화재를 만나 얽히고설킨 갖가지 사연과 일화를 남긴 채 잿더미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장안의 술꾼들은 놀이터를 잃었고 기생들은 생업 터전을 상실했지만, 술집이 명월관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었으므로 오히려 화제는 화인을 놓고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친일 정객들이 나라 팔아 받은 돈으로 거들먹거리던 곳이었기 때문에 시원하다고 말하는 노인네들이 있는가 하면, 기생에게 욕본 고관이 분풀이로 불을 질렀다는 얘기, 가산을 탕진한 아들 때문에 화가 상투 끝까지 치민 시골 양반이 시킨 일이라는 등 자기들 나름대로 그럴싸한 추측을 했지만, 정확한 화인은 가려지지 않았던 것으로 생각된다.
어쨌든 명월관은 붙타 없어졌으나 주인 안순환씨가 남아 있고, 또 명기와 손님이 명월관의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한 명월관은 다시 일어설 여지가 있었다.
그윽하고 깊숙한 곳을 찾아 나선 안순환씨가 새로 자리잡은 곳은 순화궁(현 종로구 인사동 194) 자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