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김지나 기자 =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 소송은 대법원이 최 회장의 손을 들어주며 막을 내렸다. 이번 이혼은 '세기의 소송'이라 불릴 만큼 그 어떤 재판보다 화려하고 요란했다.

10년 전인 2015년, 최 회장은 노 관장과의 결혼 생활을 정리하고 새로운 가정을 꾸리겠다는 뜻을 공식적으로 밝히며 일약 재계의 '사랑꾼'으로 떠올랐다. 그는 "이혼에 대한 논의를 이어가던 중 우연히 마음의 위로가 되는 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분과 함께하는 삶을 꿈꾸게 됐습니다"라며 혼외 자녀의 존재까지 공개해 마치 헐리우드를 방불케 했다.
이후 이혼 과정은 순탄치 않았고, 그 중심에는 '돈'이 있었다. 핵심 쟁점은 최 회장이 보유한 SK 주식을 재산분할 대상에서 제외되는 '특유재산'으로 볼 것인지 여부였다. 1심 법원은 SK 지분을 분할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했지만, 2심 재판부는 이를 분할 대상으로 인정하며 재산분할액이 1심의 665억 원에서 2심 1조3808억 원으로 천문학적으로 불어났다.
2심 판단의 배경에는 SK로 흘러들어간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 있었다. 노소영 관장은 항소심 과정에서 모친 김은숙 여사가 보관하던 1991년 선경건설(SK에코플랜드 전신) 명의 약속어음과 '선경 300억' 메모를 증거로 제출했고, 재판부는 이를 근거로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 SK그룹 성장의 종잣돈이 됐다고 판단했다.
자신의 이혼 소송에서 대통령이었던 아버지가 조성한 비자금을 기업에 투입했다는 자료를 증거로 제출하는 기현상이 벌어진 셈이다. 이는 비자금에 대한 법적 책임이 공소시효 완성으로 소멸했다는 전제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2심 판결을 파기환송하며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에 대해 법적 보호 가치가 없다고 판단했다.
흥미진진했던 '세기의 이혼'은 막을 내렸지만, 이번 사건이 우리에게 남긴 과제는 명확하다. 바로 법적 보호 가치가 없다는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의 법적 책임 문제다. 현행법상 노 전 대통령은 사망해 기소가 불가능하고, 따라서 비자금 환수도 막혀 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범인이 사망하거나 공소시효가 종료되더라도 불법 재산만 별도로 몰수·추진할 수 있는 '독립몰수제' 법안이 발의됐지만 국회에 계류 중이다. 더불어민주당은 독립몰수제 입법을 정기국회 내 추진하기로 했다. 과거사 문제를 바로잡고,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에 대한 법적 책임 문제는 이제 시작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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