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9년 리버풀 팬 97명이 목숨을 잃은 힐스버러 참사의 진실을 되새기며 영국 의회에 이른바 ‘힐스버러 법안(Hillsborough Law)’이 제출됐다.
글로벌 스포츠 전문 매체 디애슬레틱은 16일 “정식 명칭은 공직자 책임법(Public Office Accountability Bill)으로, 재난이나 대형 사고 발생 시 공직자에게 ‘진실 의무(legal duty of candour)’를 부과한다”며 “조사 과정에서 거짓 진술을 하면 최대 2년 징역형을 받을 수 있으며, 유족들은 공공재정으로 법률 지원을 받을 권리를 갖게 된다”고 전했다. 또한, 이 법안은 재난과 관련된 조사와 심리에서 국가와 유족이 동등한 조건으로 법적 절차에 참여할 수 있도록 보장한다. 그동안은 국가가 대형 로펌이나 법률팀을 내세워 피해자 가족을 압도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이제는 유족에게도 공공재정을 통한 법률 지원이 주어지고, 공공기관은 법률 비용을 ‘비례성 원칙’에 맞게 제한해야 한다.
이번 법안은 수십 년간 투쟁을 이어온 힐스버러 유족들의 목소리가 반영된 결과다. 힐스버러 참사 희생자 유족 대표로서 오랫동안 정의를 요구해온 마거릿 애스피널은 “이제는 평범한 시민 누구도 우리처럼 고통받지 않기를 바란다”며 환영했다. 그는 힐스버러 참사에서 당시 18세였던 아들을 잃은 뒤 30년 넘게 유족들과 함께 진실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해 싸워왔다. 리버풀 FC 역시 “유족들의 용기와 끈기가 법을 바꾸었다”고 성명을 냈다.
키어 스타머 총리는 “국가는 국민 위에 숨을 수 없다”며 법안 도입을 선언했고, 이는 그렌펠 타워 화재, 감염 혈액 사건, 윈드러시 스캔들 등에도 교훈을 주리라 전망된다. 디애슬레틱은 “참사의 아픔은 여전히 영국 사회의 기억에 남아 있지만, 이번 법안은 재난 은폐를 막고 국민 권리를 지키는 제도적 전환점으로 기록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힐스버러 참사는 1989년 4월 15일, 잉글랜드 셰필드 힐스버러 스타디움에서 열린 잉글랜드축구협회(FA컵) 준결승 리버풀–노팅엄 포레스트전에서 관중 수용 한계를 넘어선 입장 통제로 관중석 입구에 대규모 압사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리버풀 팬 97명이 목숨을 잃고 수백명이 부상했다. 사고 직후 경찰과 당국은 책임을 회피하며 팬들에게 책임을 돌렸고, 언론 역시 왜곡 보도를 내보내면서 피해자와 유족들은 수십 년간의 진상 은폐와 왜곡에 맞서 싸워야 했다. 2012년 독립 조사 보고서가 경찰의 잘못과 은폐 정황을 드러내면서 사건의 진실이 규명됐고, 이후 영국 사회에서는 재난 대응과 공권력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