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세 고시’가 서울 강남을 중심으로 유행이다.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아이들이 유명 영어학원에 들어가려고 보는 시험이란다. 7세는 늦다며 ‘4세 고시’도 생겼다. ‘초등 의대반’과 ‘초등 특목반’도 있다. 우리나라 아이들은 초등학교 전부터 사교육이 기획한 ‘입시 경쟁’에 내몰린다. 아동학대나 마찬가지다. 지난 13일 교육부가 발표한 ‘2024 유아 사교육비 시험조사’ 결과를 보면 6세 미만의 아이 중 절반가량이 사교육을 받았고, 영어 사교육 비용으로 1인당 월평균 154만원을 썼다. 이 정도면 사교육 열풍이 아니라 광풍이다.
초중고 사교육 바람도 꺾이질 않는다. 같은 날 통계청이 밝힌 ‘2024년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 결과를 보면 지난해 사교육비는 30조원에 육박하며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1년 전보다 학생 수는 8만명이 줄었는데 총액은 오히려 2조원이나 늘었다. 학생 10명 중 8명이 사교육을 받았고 월평균 59만원을 썼다. 과도한 사교육비 부담에 학부모 허리가 휜다.
‘교육’이란 이름이 붙었지만, 사교육은 결국 비즈니스다. 7세·4세 고시는 ‘신상’이다. 공급자인 학원도, 수요자인 학부모도 궁극의 목표는 ‘돈’이다. 한마디로 ‘돈 놓고 돈 먹기’다. 학부모는 자기 자녀가 뒤처질까 두려워서, 좋은 대학 좋은 과를 나와 고소득 직장에 가길 바라면서 너도나도 형편껏 사교육에 뛰어든다. 하지만 광기에 가까운 지금 사교육은 개인과 사회에 심각한 병리 현상을 일으킨다. 아이들은 사교육이 공교육을 압도하는 현실에서 자연스럽게 돈을 삶의 가장 소중한 가치로, 경쟁을 사회의 기본 질서로 익힌다. 이렇게 돈을 목표로 치열하게 경쟁하는 사회가 만들어진다. 오늘 우리 사회의 모습이다.
돈·경쟁 일변도 한국 만든 교육
경쟁은 소수의 승자와 다수의 패자를 전제한다. 사교육은 경쟁을 강화할 뿐이다. 아무리 사교육에 매달려도 경쟁 구도는 변함이 없고 다수는 패자가 된다. 2023년 한국은행 연구보고서도 짚었듯이, 청년들은 경쟁과 고용·주거·양육 측면의 불안을 많이 느낄수록 결혼과 출산을 망설인다. 미혼율이 높아지고 출산율은 낮아진다. 고령화는 빨라진다. 이런 결과를 낳는 경쟁을 이제 유아부터 하고 있다. 이러다 다 망한다.
1980년대 이후 성장 둔화로 자본이 값싼 노동력을 찾기 시작하면서 좋은 일자리는 점점 줄어들었다. 우리나라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비정규직이 ‘반듯한 정규직’을 대체했고 이제는 프리랜서, 플랫폼·특수고용 노동자가 대폭 늘었다. 많은 청년이 불안정한 일자리를 전전한다. 나중에 좋은 일자리로 옮기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구직을 포기하고 ‘그냥 쉬는’ 청년도 늘어난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나름으로 열심히 준비했지만 좋은 일자리를 구하기 힘든 현실에서 좌절과 소외를 겪는 청년이 늘어난다. 거듭되는 좌절과 소외는 사회를 향한 분노를 낳는다. 비슷한 처지인 사람이 많아지면 세력이 생겨나며 극우의 풍요로운 토양이 마련된다. 극우는 사회적 좌절과 소외를 먹고 자란다. 오늘 우리 사회의 모습이다.
대부분 지금 사교육이 문제라고 느껴도, 막상 자기 일이 되면 생각이 달라진다. “사회가 그런 걸 어떡하나.” 다들 한다며, 다른 선택지가 없다며 아이들을 사교육에 밀어 넣는다. 하지만 아이들이 ‘그런 사회’에서 살아남기만 바라며 비정상인 사교육에 휩쓸리기보다 ‘그렇지 않은 사회’를 만들려고 노력하는 게 정상이 아닐까. 우리는 탄핵 광장에서 돈과 경쟁이 유일한 선택지가 아님을 새삼 확인했다. 연대, 공감, 지지, 협동, 배려, 관용이 돈과 경쟁보다 소중한 가치임을 체험했다. 거기에 참된 행복과 보람이 있음을 절절히 깨달았다. 우리가 다시 만날 세계는 이전과 달라야 한다고 함께 외쳤다.
누가 어떻게 다른 사회를 만들 것인가. ‘킬러 문항’ 폐지를 대책으로 내놓는 정부는 그럴 능력도, 의지도 없어 보인다. 민주주의의 주인인 우리가 나설 수밖에 없다. 이 과제가 너무 어렵고 막막하게 느껴진다면 지금까지 우리 사회가 어떻게 변해왔는지 되돌아보자.
다른 사회 원한다면 다른 교육을
1987년 초까지 철옹성처럼 보이던 군사독재 체제도 거기에 순응하길 거부하는 사람이 많아지자 맥없이 무너지고 적어도 절차적 민주주의가 보장된 체제로 변했다. 지난번 반헌법적 비상계엄이 실패로 끝난 까닭도 비슷하다. 이제 사람이 변했고 시대가 변한 거다. 사교육도 마찬가지다. 아이들이 돈과 경쟁에 찌들지 않기를 바라는 사람이 많아지면 우리 바람도 그만큼 현실이 된다.
적어도 초등학교까지 교육은 자연에서 또래와 마음껏 뛰노는 것이 주가 되어야 한다. 아이들은 자연과 친구에게서 어떤 학원도 줄 수 없는 소중한 것을 배운다. 내가 사는 수녀원 뜰에서 함께 뛰노는 아이들의 활짝 핀 얼굴을 볼 때마다 드는 확신이다. 행복하게 자라나는 아이가 많아질수록 우리 사회도 행복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