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는 패키지 안간다? 가격 올리고 되레 최대실적 낸 여행사

2025-03-03

[인터뷰] 송미선 하나투어 대표

2024년 한국인 2868만명이 해외로 나갔다. 코로나 사태 이전인 2019년(2871만명)의 99% 수준이다. 개별자유여행 시대라지만, 지난해 출국한 한국인 중 약 12%(356만명)가 한 곳의 여행사를 이용했다. 하나투어다.

하나투어 송미선(49) 대표를 만났다. 여행업 경험이 전무했던 컨설턴트 송미선은 코로나 사태 초기 하나투어 대표로 투입됐다. 그리고 지난해 하나투어는 1993년 창사 이래 최고 실적을 달성했다. 영업이익만 508억원을 벌어들였다. 지난 5년간 인간 송미선에겐 무슨 변화가 있었을까. 어떻게 코로나 위기를 극복했고 역대 최대 실적을 올린 비결은 무엇일까. 대표 부임 5주년을 맞은 송미선 하나투어 대표를 본지가 단독으로 만났다.

대표로 부임한 지 이달로 5년이 됐다. 소회는.

20년 가까이 컨설턴트로 일했다. 여행사에 와보니 처음에는 이 일이 보통이 아니구나 싶었다. 우리 상품으로 여행한 뒤 손편지를 보내오는 고객이 많다. 내가 누군가의 꿈을 이뤄주는 아주 좋은 일을 한다고 느꼈다. 동시에 여행업이 외부 위기에 매우 취약하다는 것도 알았다. 코로나는 차치하고 2024년만 해도 대만 지진, 위메프·티몬 사태, 제주항공 무안공항 사고 등 악재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내가 관리할 수 없는 범위의 일이 너무 많이 일어난다. 여행사 대표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 싶다.

이렇게 힘들 줄 몰랐다면, 어떤 생각으로 하나투어 대표를 맡았나.

새로운 일에 도전하면서 세 가지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먼저 성장하는 산업에서 일하고 싶었다. 2019년 당시 이커머스·화장품·여행업 세 업종만 두 자릿수 성장세를 기록 중이었다. 1등 기업에서 일하고 싶었고, 아는 사람이 있는 회사가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나투어가 이 모든 조건을 충족했다. 하나투어와는 2016, 2019년 두 차례 경영 컨설팅을 한 인연이 있다.

코로나 사태 초기 여행사 대표가 됐다. 2021년에만 하나투어 직원 1000여 명이 회사를 떠났다.

여행이 금지된 시절이었다. 막대한 손실이 발생했고, 사업과 조직을 재편할 수밖에 없었다. 호텔과 면세점을 정리했고, 희망퇴직을 진행했다. 코로나 위기가 극심했을 때는 필수 인력만 출근했고, 나도 무급 휴직 시절을 버텼다. 그러나 여느 여행사보다 전 직원을 일찍 복귀시켰다. 매출이 거의 없었지만, 회사 측이 과감히 투자를 결정했다. 덕분에 신속한 시스템 개편과 상품 재정비가 가능했다. 현재 신규 채용을 늘리는 중이고, 퇴사했던 직원 중 재입사하는 경우도 있다. 2019년 말 직원 수는 약 2500명이었고, 현재는 약 1300명이다.

호텔과 면세점을 다시 할 계획은 없나?

하나투어의 근본은 여행업이다. 다른 사업과 시너지를 낸다는 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특히 호텔과 면세점은 규모가 중요한 업종이다. 호텔과 면세점이 독자적으로 사업을 잘했으면 좋았겠지만, 코로나가 모든 걸 다시 검토하도록 했다. 그때는 본질인 여행업에 집중하는 게 맞다고 판단했다.

하나투어가 2024년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비결이 뭔가.

총매출은 최고치를 찍었던 2018년(8282억원)보다 약 2000억원 줄었다. 대신 영업이익은 249억원에서 508억원으로 두 배 넘게 끌어올렸다. 호텔·면세점을 정리하는 등 경영 효율화를 꾀한 효과도 있었지만, 전부는 아니다. AI 서비스를 고도화하고, 여행상품을 개편한 게 결정적이었다. 작년에 AI 채팅을 도입했는데, 이용자가 금세 10만명이 넘었다. 항공권 최저가 알림 서비스와 날짜에 따른 취소 위약금을 알려주는 AI 환불 서비스도 작년에 업계 최초로 선보였다. 무엇보다 기존 패키지여행의 단점을 보완한 새 상품이 호응을 얻으면서 수익이 커졌다.

패키지 여행상품을 어떻게 바꿨나.

수십 년 전, 호주·뉴질랜드 패키지여행을 다녀왔는데 지금까지도 일정이 그대로인 걸 보고 놀랐다. 변화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하나팩2.0’을 만들었다. 단체 쇼핑과 선택 관광(옵션), 가이드·기사 팁은 다 빼고, 대신 시내 중심가 호텔 숙박, 현지인 추천 맛집 방문 등을 넣었다. 이런 식으로 상품을 바꾸니 일정이 여유로워졌고, 손님과 가이드 모두 만족도가 높아졌다. 이를테면 백두산 상품은 줄 서지 않고 올라가는 북파 천문봉 VIP 코스를 포함했다.

패키지여행에서 쇼핑과 옵션을 빼면 가격이 오른다.

상품 가격이 30%에서 최대 다섯 배까지 올랐다. 그래도 저가 상품보다 훨씬 인기가 많다. 저가 상품을 선택하고 현지에서 돈을 더 쓰는 것보다 미리 제값을 내는 게 편하다는 걸 고객도 아는 시대다. 이를테면 튀르키예(터키) 패키지 상품은 여행사 대부분이 100만원선에 판다. 심지어 50만원 미만짜리도 있다. 하나팩2.0의 튀르키예 상품은 300만원대다. 그런데도 잘 팔린다. 작년에 하나투어에서 판매된 유럽 패키지 상품의 약 80%가 하나팩2.0이었다. 처음 하나팩2.0을 시작했을 때 “여행업도 모르는 사람이 와서 하나투어를 망하게 한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요즘 다른 여행사가 비슷한 컨셉트로 따라 하는 걸 보면서 어느 정도는 성공했구나 생각했다.

젊은 층은 패키지여행을 외면하지 않나.

그렇지 않다. 20~30대만 참여하는 상품, 아는 이들만 소그룹으로 여행하는 상품을 개발했고, 반응이 아주 좋다. 이탈리아 포르쉐 드라이브 여행, 북미 서부해안 모터사이클 투어 등 여행자의 로망을 실현하는 테마 상품도 꾸준히 선보이고 있다. 최근에는 베트남 사빠 여행이 인기다. 처음 하나투어에 왔을 때 다른 여행사가 우리 상품을 그대로 베낀 걸 볼 때마다 격분했다. 지금은 여행업 자체가 독창성을 존중받기 어려운 업종이라 걸 숙명처럼 받아들인다. 대신 최대한 따라 하기 어렵게 상품을 만드는 데 공을 들인다.

최근 경기 불황과 달러 강세로 해외여행이 부담스러워졌다. 시장 전망은?

단기 예측은 불가능하다. 워낙 변수가 많아서다. 지난 연말, 연이은 항공 사고가 여전히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낙관한다.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한국인은 GDP 대비 여가 지출이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 인구 감소와 고령화가 문제지만, 여행사의 돌봄이 필요한 고객이 많아진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돈을 더 쓰더라도 안전하고 편하게 여행하려는 사람은 늘어날 것이다.

외국인의 방한 관광 열기가 뜨겁다. 하나투어는 어떤가?

인바운드 전문 자회사 ‘하나투어ITC’도 코로나 사태 이후 조직을 정비하고 상품을 고급화했다. 요즘은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이 1주일 체류에 200만원이 넘는 고가 상품을 이용하고 있다. 강원도 평창의 ‘인 더 숲 BTS 촬영지 투어’는 세계 최대 여행 리뷰 업체 ‘트립어드바이저’가 국내 1위, 아시아 6위 여행상품으로 선정했다.

싱가포르에 투자법인을 세운다는 소식도 있다.

늦어도 4월에는 싱가포르에 투자법인을 설립한다. 현지 여행업체와 전략적 제휴를 맺고 인수·합병하거나 투자할 회사도 찾을 계획이다. 내국인에 편중된 사업을 다각화하는 차원이다. 쉽게 말해 싱가포르인이나 태국인에게 한국은 물론이고, 일본, 유럽을 가는 여행상품을 파는 식이다.

한국방문의해위원회 이사를 맡고 있다. 관광 정책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은.

정부가 외국인 방한 관광 활성화에 열심인 건 이해한다. 다만 그 일은 관광청을 만들어 집중하는 게 좋지 않나 싶다. 아직 여행업이 하나의 산업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 같다. 아웃바운드(한국인의 해외여행)를 관광수지 적자의 주범으로만 보지 말고 균형 잡힌 시각을 가졌으면 한다.

작년 4월 하나투어 매각설이 불거졌다.

현재 하나투어의 대주주는 사모펀드(IMM PE)가 설립한 유한회사 ‘하노미아 1호’다. 대주주가 하나투어를 판다면 파는 것이다. 하나투어가 매각 대상이라는 건 하나투어 대표인 나도 교체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래서 매각과 관련해선 내가 할 수 있는 말이 없다. 직원에게도 우리는 할 일을 하는 데 집중하자고 말하고 있다.

다시 2020년으로 돌아간다면, 하나투어 대표직을 맡을 생각인가?

같은 선택을 할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지난 5년이 경영자로서 발전한 시기였다고 믿는다. 어려운 시기를 겪으면서 직원들과 전우애가 생겼다. 좋은 실적을 낸 건 내가 잘해서만은 아니었다. 내가 회사에 스며들도록 도와준 사람들의 공이 컸다.

송미선 하나투어 대표

1976년 부산 출생

서울대 경영학과 졸업

미국 펜실베니아대 와튼스쿨 석사

2001~2020 보스톤컨설팅그룹 근무

2020년 3월 하나투어 대표이사 선임

대한상공회의소 관광산업위원회 부위원장

한국여행업협회(KATA) 부회장

한국방문의해위원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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