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만 원인이 의지박약?

2025-07-31

“비만한 사람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세요?”

이런 질문을 받는다면, 당신은 뭐라고 대답할까. 지난 10여년간 세계 곳곳에서 이뤄진 연구를 보면 비만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놀라울 만큼 유사하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많은 이들이 비만한 사람을 ‘의지가 약하다’ ‘게으르다’ ‘자기관리가 부족하다’ ‘노력하지 않는다’라며 부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본다. ‘건강이 걱정된다’라는 말조차 때로는 부정적 평가와 판단을 감춘 시선이다.

낙인과 편견에 더 절망한 사람들

복지 사각지대서 취업도 어려워

정부 무관심에 의료보험도 안돼

외모에 민감한 청소년들에게 이런 편견은 따돌림이나 학교폭력으로 이어지기 쉽다. 최근 주변 시선을 의식해 체중에 민감한 사람이 많아졌다. 외모 평가나 차별 가능성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작은 체중 변화에도 큰 스트레스를 받는다. 건강보다는 외모 기준에 자신을 맞추려 다이어트에 집착한다.

체중을 둘러싼 편견과 낙인은 사회 불이익과 경제 손실로 이어진다. 해외 연구에 따르면 비만 여성은 일반 여성보다 임금이 최대 12% 낮고 저임금 직종에 종사할 가능성이 크다. 국내 통계가 아직 없지만, 오히려 더 나쁠 것이라는 시각이 많다. ‘비만은 무능력’이라는 인식은 지금도 채용과 승진에서 부당한 차별로 작용하고 있다.

고도비만 연구 결과를 발표할 때의 일이다. 한 시사 프로그램 제작진이 홀로 아이를 키우는 여성 사례자와 함께 찾아왔다. 운동선수 생활을 접은 뒤 급격히 체중이 불어난 그녀는 당뇨병·고혈압·관절염을 앓고 있었다. 취직이 안 돼 전화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이어가던 터라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고 결국 아이의 사소한 행동에 감정을 이기지 못해 손찌검하고 말았다. 가정폭력으로 모자는 분리 조처됐고 취재 당일에도 그녀는 아들의 그림자라도 보기 위해 위탁가정이 있는 놀이터 주변을 서성였다. 아이는 전화를 걸어 “엄마 살 빠졌어? 보고 싶어”라며 울먹였다고 한다.

이런 가슴 아픈 사연은 고도비만 환자 사이에서 그리 드문 경우가 아니다. 한 20대 청년은 조손가정에서 자랐다. 어릴 때부터 비만으로 인한 따돌림으로 정신건강의학과 치료를 받아왔다. 그의 꿈은 돈을 벌어 치매를 앓는 할머니를 요양원에 모시는 것이었다. 자격증만 10개 가까이 취득했지만, ‘비만하다’는 이유로 어디에서도 받아주지 않았다. 하루 3시간씩 자며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던 그는 마침내 한 카페에 인턴으로 채용되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해고됐고 결국 자살까지 시도했다. 다행히 지금은 건강을 회복해 안정된 직장에 다니고 있다.

이처럼 절박한 사연을 지닌 이들을 진료실에서 마주할 때마다 안타까움과 무력감을 동시에 느끼게 된다. 고도비만 치료는 여전히 건강보험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효과적이고 안전한 약들이 개발되었지만, 고가에다 진료 자체도 비급여라 비용 부담이 크다. 약물치료는 여전히 많은 고도비만 환자에게 ‘그림의 떡’일 뿐이다.

약이 어렵다면 운동과 식사요법이라도 강조해야 한다. 하지만 건강 식단의 핵심인 채소와 과일 가격이 만만치 않다. 반면 값싸고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은 기름지고 달다. 결국 경제적 여유가 없는 고도비만 환자들은 고칼로리 식품에 끌릴 수밖에 없다. 운동도 만만찮다. 거리에서 조깅하려면 사람들의 시선이 부담스럽다. 헬스장에 가고 싶어도 하루 벌어 살아가는 삶에 시간과 비용을 따로 떼어내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많은 고도비만 환자는 낮보다 덜 노출되는 야간을 택해 조용히 걷거나 운동한다.

일본 도쿄대학교 교수를 만난 자리에서 물은 적이 있다. “왜 일본은 신체활동보다 영양 정책에 집중하냐”라고. 돌아온 대답은 이랬다. “일본에서 살아봤나요? 여기엔 운동 시설이 아주 많아요. 부족한 건 영양 쪽이에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둘 다 부족한 우리 현실에 할 말을 잃었다. 우리 정부도 2018년 ‘제1차 국가 비만 관리 종합대책’을 수립한 바 있다. 하지만 2차 대책은 어느덧 자취를 감췄고, 비만 정책을 담당해야 할 보건복지부 사무관은 오랜 시간 공석이다. 게다가 비만 관리 정부 예산은 사실상 제로에 가깝다. 정부가 이 문제를 과연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고도비만은 단순히 ‘게으름’의 결과가 아니다. 다양한 사회적·환경적 요인이 얽힌 복합적인 결과다. 비만에 대한 낙인과 편견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비만 환자 역시 위축되지 말고 당당히 왜곡된 시선을 이겨내야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무엇보다 정부와 지자체의 역할이 중요하다. 비만을 예방하고 극복할 수 있는 정책과 인프라에 과감히 투자하길 바란다. 문제를 외면하고 침묵하면 결국 더 큰 비용이 된다.

오상우 동국대 일산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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