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는 계속되어야 한다

2025-04-06

“제대로 안 해? 그게 어떻게 스트라이크야!?” 90년대 초, 쌍방울 레이더스의 경기를 보러 전주종합경기장을 찾았을 때다. 관중석에서 술에 거나하게 취한 아저씨 한 분이 계속 심판에게 시비를 걸었다. 계속되는 항의(?)에 심판이 갑자기 경기를 중단시키더니 관중석에 있는 아저씨에게 경고를 주었다. 불에 기름을 부은 듯 아저씨는 오히려 더 심하게 대거리를 하였고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약간 무섭기도 했지만, 아저씨와 심판 사이의 싸움이 재미있었다.

결국 주변 다른 관중들의 만류로 아저씨는 심판에게 더 이상 시비를 걸지는 않았다. 사실 어린 아이가 보기에도 당시 경기에서 스트라이크 존이 너무 넓었다고 생각했기에 약간 통쾌했다. 아저씨의 항의 덕분인지 몰라도 스트라이크 존은 좁혀졌고 경기는 쌍방울의 역전승.

스포츠 경기에서 심판의 역할은 중요하다. 경기 규칙이 복잡하고 볼 판정이 중요한 야구 뿐만 아니라 축구나 테니스 같은 종목도 심판이 어떻게 판정하느냐에 따라 경기에 심대한 영향을 미친다. 선수들의 경기력을 평가하는 피겨스케이팅 같은 종목은 심판의 판정이 아예 승패를 결정해 버린다.

2014년 불공정한 판정으로 승리를 쇼트니코바에 빼앗겨버린 김연아 선수의 경기가 대표적인 예다. 당시 국가적인 공분을 샀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2002년 월드컵 이탈리아와 8강전에서 모레노 심판(이름도 기억할 정도로 인상적이었다)은 이탈리아 선수인 토티를 퇴장시켰고, 1명이 빠진 이탈리아 대표팀은 결국 대한민국 대표팀에 역전패를 당하고 말았다. 당시 눈을 위로 치켜뜨고 레드카드를 든 손을 번쩍 든 모레노 심판의 모습은 인터넷에서 각종 유쾌한 ‘밈’으로 소비되었다.

열광은 잠시. 4년 뒤 개최된 2006년 월드컵 스위스전에서 스위스의 골이 오프사이드가 아니라는 판정이 논란이 되었다. 진정 오프사이드였는지 여부와는 별개로 4년 전 이탈리아 국민들이 느꼈던 억울함(?)을 우리나라 국민들은 느낄 수 있었다. FIFA 홈페이지에 항의글을 올리면 판정이 취소된다는 루머가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홈페이지에 글을 올렸는데, 물론 결과는 번복되지 않았다.

심판은 전지전능하지 않다. 사람이라서 그렇다. 요즈음 축구에서는 오심을 줄이기 위해 VAR(Video Assistant Referees, 비디오 보조심판)을 도입했다고 한다. 명칭 그대로 비디오 판독으로 사람인 심판의 오류를 보정해주는 또 하나의 심판이다. VAR는 사람 심판이 헷갈릴 수 있는 오프사이드나 공이 골라인을 넘겼는지 여부와 같은 일들에 대해 영상 분석과 같은 과학적인 방법으로 판단한다. 하지만 VAR의 판독 또한 사람 심판이 하는 일이어서 완벽하지는 않다.

오판을 일삼는 심판이 많다면 그 스포츠는 인기가 떨어진다. 다른 어떠한 조건도 고려하지 않고 오직 실력으로만 공정하게 승자가 결정되기에 사람들은 스포츠에 열광한다. ‘땀(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경구가 우리네 삶에서 가장 순수하게 적용된다.

요즈음 세상만사 모든 일을 판사가 판단하게 되었다. 쉬운 말로 ‘하다 하다 안되어서, 말이 통하지 않아서’ 분쟁을 불가피하게 권위있는 기관을 통해 해결하고자 하는 취지로 만들어진 것이 사법부다. 따라서 민주주의 국가에서 사법부는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이다.

대화와 타협의 예술인 민주주의하에서 정치가 자꾸만 사법화가 되어 안타깝다. 정치의 사법화와는 별개로, 사법부에 대한 존중은 필요하다. 자신의 견해와 다른 판단이 나왔다고 판사의 신상을 털고 인신공격을 하는 것은 야구경기장의 술 취한 아저씨가 되는 일이다. 대한민국의 경기(민주주의)는 계속되어야 한다.

나영주 <법률사무소 신세계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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