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터리] CVC의 활성화를 바라며

2024-10-29

지난해 사상 최대 유보금을 쌓았지만 위기에 봉착한 삼성전자와 2년 연속 투자 감소로 어려움에 직면한 벤처 업계 등 최근 경제 분야에서 우울한 소식들이 적지 않다. 대기업과 벤처기업의 어려움을 함께 풀어나갈 해결책을 고민하다 ‘기업형 벤처캐피털(CVC)’ 활성화를 떠올렸다.

CVC는 일반적으로 대기업이 설립해 대주주로 포진한 벤처캐피털을 얘기한다. 혁신적 아이디어가 있는 스타트업에 투자해 재무적 수익을 획득하는 것은 물론 대기업이 계열사와 연계성을 고려해 전략적 인수합병(M&A)을 진행할 수도 있다. 대기업 입장에서 CVC는 벤처기업에 자본을 투자해 혁신 잠재력을 높이고 활용하는 경영 전략의 하나다. 벤처 육성과 대·중소기업 협력 관점에서는 민간 주도의 동반 성장 정책을 위한 돌파구일 수 있다.

김대중 정부 당시 정부 주도의 대대적인 벤처기업 활성화 이래 혁신 기술 기업을 키우고 대·중소기업 동반 성장을 위한 정책들이 꾸준히 실행됐다. 아울러 지자체·공공기관이 적극적으로 관여하는 동반 성장 정책도 추진됐지만 시장의 요구를 적시에 반영하는 개방형 혁신 생태계를 이루기에는 부족함이 있었다. 결국 대기업과 벤처기업의 협업은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게 CVC를 통한 민간 주도로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었다.

삼성전자 등 일부 대기업은 이미 1990년대 말부터 전략적 수단으로 CVC를 인식하고 도입했다. 다만 산업자본과 금융자본 간 교차 소유를 금지하는 ‘금산 분리’ 원칙 때문에 해외 법인 또는 지주회사 체제 밖 계열사 형태로 설립해야 하는 제약이 있었다. 금산 분리 원칙은 금융 안정성과 산업자본의 건전한 운영을 위한 제도지만 나날이 치열해지는 글로벌 경쟁 앞에서 유연성에 대한 요구를 피할 수는 없다. 결국 2021년 문재인 정부 시절 공정거래법 개정으로 대기업 지주회사의 CVC 설립이 허용됐다.

도입 당시 벤처기업의 경영 리스크 증가와 대기업의 편법 승계 등 부작용 우려도 있었지만 민간 주도의 대·중소기업 협력을 바탕으로 혁신을 주도할 개방형 생태계를 실현한다는 목표 때문에 도입됐다. 벤처기업 경영 리스크 경감을 위해 복수 의결권을 도입한 것처럼 CVC 도입의 취지를 살리기 위한 제도의 지속적 보완과 함께 엄정한 집행도 두말 할 필요가 없다.

한국 경제는 인공지능(AI)·빅데이터·반도체·바이오테크 등 첨단 기술의 혁신 없이는 더 나아가기 어려운 지경에 도달했다. 대기업들도 구글벤처스처럼 벤처기업과 함께 끊임없이 기술 혁신을 이뤄야만 한다. 대기업 CVC가 부작용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키고 ‘개천에서 나온 용’을 만드는 혁신 기업 신화의 또 다른 주역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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