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장경험 풍부…수입의존 약점
AI 학습 정제·공유데이터 부족
반도체·車·배터리·조선 등
기술 검증 테스트베드 강점
서비스 로봇 수요발굴 필요
거대언어모델(LLM), 비전언어모델(VLM) 등 파운데이션 모델이 확산하고 주변 환경을 인지·학습해 행동으로 연결하는 '피지컬 AI'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로봇 경쟁의 패러다임이 근본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로봇의 승부처는 더 이상 하드웨어 정밀도에만 있지 않다. 사람처럼 정교한 작업을 수행하는 동시에 스스로 상황을 판단하고 행동하는 고도의 지능을 갖추지 못하면 글로벌 로봇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려운 국면이다.
◇약점과 위협
세계 제조 로봇 시장에서 국내 기업 점유율은 약 7%에 불과하다. 높은 정밀도가 요구되는 제조 로봇 분야는 여전히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로봇 생태계 핵심인 부품과 소프트웨어 경쟁력은 일본·독일의 3분의 2 수준에 그친다는 평가다.
서비스 로봇 분야도 아직 초기 단계다. 시장 규모는 제조 로봇의 3분의 1에 불과하다. 서빙 로봇은 중국산이 국내 시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 것으로 분석된다.
AI 소프트웨어와 플랫폼 주도권을 글로벌 빅테크에 의존하는 구조도 미래 로봇 경쟁력 확보에서 약점으로 꼽힌다.
한국은 제조·물류 현장에서 방대한 로봇 운영 데이터를 생산하고 있지만, 이를 AI 학습에 활용할 수 있도록 정제·공유하는 체계는 부족하다. 개인정보 보호와 기업 영업비밀 등의 이유로 인해 각 기업이 현장에서 발생하는 데이터만 이용하는 현실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데이터 경쟁력이 AI 로봇 경쟁력으로 직결하는 점을 감안하면 치명적 한계다.
대외 환경도 녹록지 않다. 한국이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미국의 '첨단 기술'과 중국의 '가격·스케일'이다. 미국은 AI와 클라우드 플랫폼 등을 무기로 로봇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중국은 압도적인 제조 스케일과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시장을 잠식하고 있다. 특히 중국이 휴머노이드 로봇에 대규모 투자를 집중하면서 한국 로봇 산업에 직접적인 위협이 되고 있다.
◇강점과 기회
이 같은 약점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AI 로봇 산업에는 분명한 기회가 있다.
핵심은 '현장 경험'이다. 고정밀 공정, 까다로운 품질 기준, 고도화된 제조 시스템을 운용해온 경험은 단연 세계적인 수준이다.
이는 한국이 선진 AI 로봇을 적용하고 검증하기에 최적의 글로벌 테스트베드가 될 수 있음을 뜻한다. 반도체, 자동차, 배터리, 조선 등 첨단 로봇 도입 효과가 극명한 산업에서 한국이 세계적 경쟁력을 보유한 만큼 기술 검증-고도화-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배병주 로보스타 대표는 “제조 현장에서 쌓은 풍부한 경험과 높은 생산 완성도를 로봇에 얼마나 잘 녹여내 시스템으로 구현하느냐가 관건”이라며 “로봇 산업에서 한국의 마지막 기회는 산업용 로봇에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미 휴머노이드 분야는 중국이 규모의 경제로 앞서 나가는 만큼 로봇 단품 경쟁으로는 승부를 보기 어렵다”며 “가격 경쟁으로 중국을 이기겠다는 전략은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어 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고령화와 저출생, 강화되는 산업 안전 규제도 국내 로봇 수요를 끌어올리는 사회 구조적 요인이다. 주요 산업 현장에서 로봇 도입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는 흐름이 빨라졌다.
◇데이터 체계·로봇 사용 표준화 주도해야
국내 로봇 전문가들은 한국이 세계적으로 강점을 가진 제조산업에 특화한 AI 로봇에서 승부를 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세부 작업 단위별로 공정을 최적화하고 안전사고를 예방하며 전체 생산성을 끌어올리는 역할을 로봇이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한국이 생산 현장에서 발생하는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수집·분석·활용하는 인프라와 표준을 선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산업·공정별 빅데이터를 축적·공유해야 AI 로봇 고도화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문전일 로보케어 대표는 다양한 서비스·제조 현장에 특화한 데이터 수집 체계를 마련하는 게 가장 시급하다고 제안했다.
문 대표는 “한국이 특유의 빠른 추진력으로 각 분야별 로봇 데이터 수집·활용 체계를 세밀하게 구축해 실행한다면 제조로봇 강국인 독일·일본보다 충분히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며 “정부와 기업이 모두 로봇 산업 경쟁력 제고에 뛰어든 만큼 신속 정확하게 대응한다면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고 역설했다.
각 수요처에 맞는 표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약제·검체·환자 물품 배송, 환자 안내 등에 서비스 로봇을 활용하고 있는 한림대 성심병원의 이미연 커맨드센터장은 로봇 자체의 표준과 운영 표준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이미연 센터장은 “한림대 성심병원의 경우 로봇을 계속 사용하고 싶다는 임직원 응답이 90%에 달할 정도로 만족도가 높다”며 “반면 로봇을 계속 사용하는데 필요한 부품 수급, 배터리 수명 등에서 기본 유지보수 체계가 상당히 부족하고 비상정지버튼 위치도 제조사마다 제각각일 정도로 표준 정립이 미비해 다 함께 문제 해결에 참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로봇에 대한 관심이 휴머노이드에만 쏠리는 것은 문제”라며 “기업, 학계, 다양한 수요처가 힘을 합쳐 서비스 로봇 사용처를 발굴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배옥진 기자 withok@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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