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요리의 맛 언어로 풀어내는 나주 홍어의 풍미

2025-10-07

[전남인터넷신문]나주 홍어는 기다림의 음식이다. 기다림에 기울이는 시간에 따라 맛이 달라지는 독특함이 있다. 그 독특한 맛에 대해 다양하게 표현하고 있으나 그 맛을 명확하게 설명하기란 쉽지 않다. 강렬하면서도 은근하고, 거부감과 매혹이 공존하는 세계를 한두 마디로 담아내기는 어렵다. 그래서 필자는 앞글에서 국악과 이탈리아 음악 용어로 맛의 표현을 풀어낸 데 이어 이번 글에서는 나주 홍어의 풍미를 프랑스 요리의 미각 언어로 풀어내 보고자 한다.

프랑스 요리에서는 맛을 단순히 강하거나 약하다고 표현하지 않는다. 질감, 향, 여운, 뉘앙스 등 복합적인 요소를 종합해 언어화하며, 이 언어 속에서 나주 홍어의 매력은 의외로 선명하게 드러난다. 먼저 홍어를 입에 넣는 순간, 코끝을 강하게 치고 들어오는 발효의 향은 피꽁(piquant, 알싸한·톡 쏘는)과 아끄르(âcre, 매캐한·자극적인)로 표현된다.

와인의 타닌이 혀를 거칠게 스치거나 겨자가 코를 찌를 때의 자극과 닮아있다. 이 첫인상은 낯설지만, 그 강렬한 충격 덕분에 홍어는 오래도록 기억되는 음식이 된다.

이어지는 질감은 다층적이다. 홍어 살은 입 안에서 처음에는 부드럽지만 씹을수록 단단한 저항감을 남긴다. 이는 모엘뢰(moelleux, 부드럽고 촉촉한)와 페흐므(ferme, 탄탄한·단단한)라는 상반된 프랑스 표현을 동시에 떠올리게 한다. 치즈가 크리미하면서도 결을 유지하는 것처럼, 나주 홍어는 발효의 과정 속에서 부드러움과 단단함이 공존한다.

홍어의 풍미는 한순간에 끝나지 않고 점차적으로 변주된다. 처음의 충격은 시간이 흐르며 은은한 감칠맛과 미묘한 단맛으로 바뀐다. 프랑스 와인 시음 노트에서 자주 쓰이는 콩쁠렉시테(complexité, 복합성)와 뻬르시스땅(persistant, 지속성)이라는 개념이 바로 여기에 들어맞는다. 홍어는 순간의 맛이 아니라, 여운과 변화를 통해 서사를 만들어가는 음식이다.

발효가 주는 깊이는 지역성과도 연결된다. 프랑스 미식의 중요한 개념인 테루아르(terroir, 토양·환경의 특성)는 포도주가 자란 흙과 기후가 향에 배어든다는 뜻이다. 마찬가지로 나주 홍어의 발효는 지역의 기후, 저장 방식, 그리고 음식 문화가 함께 빚어낸 결과물이다. 또한, 발효의 성숙을 표현하는 마튀르(mature, 무르익은·숙성된)라는 단어는 치즈나 샤르퀴트리(가공육)와 마찬가지로 시간이 곧 맛의 품격을 결정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마지막 여운은 더욱 특별하다. 홍어를 삼키고 난 뒤 혀에 남는 뒷맛에는 아메흐튬(amertume, 쌉쌀한 맛)이 배어 있고, 동시에 사부흐뢰(savoureux, 풍미 있고 감칠맛 나는)의 세계가 펼쳐진다. 단순히 강렬한 향에 머무르지 않고, 씹고 난 후에 고소하면서도 깊은 맛이 차분히 남는다. 이는 일본의 우마미(umami, 감칠맛) 개념과도 닮아 있으나, 프랑스의 미식 언어로도 충분히 담아낼 수 있다.

이처럼 나주 홍어는 강렬함과 섬세함, 복합성과 지속성이 동시에 살아 있는 음식이다. 프랑스 요리사가 와인을 두고 말하듯, 홍어의 풍미는 하나의 “시간 예술”이다. 치즈의 숙성, 와인의 테루아르, 푸아그라의 질감처럼, 나주 홍어의 맛은 발효가 만들어낸 문화적 산물이며 세계 미식의 언어로 번역 가능한 대상이다.

그렇기에 나주 홍어를 맛본다는 것은 단순히 강한 발효 향을 견디는 경험이 아니라, 시간을 품은 발효의 미학을 음미하는 일이며, 감각의 교향곡을 즐기는 행위라 할 수 있다.

참고문헌

허북구. 2025. 이탈리아 음악 용어로 풀어낸 나주 홍어의 풍미. 전남인터넷신문 허북구농업칼럼(2025-10-05).

허북구. 2025. 국악의 음색으로 풀어낸 나주 홍어의 맛. 전남인터넷신문 허북구농업칼럼(2025-10-04).

허북구. 2023. 나주 홍어, 무형문화재 지정해야. 전남인터넷신문 허북구농업칼럼(2023-03-14).

허북구. 2022. 호남선의 홍어와 전라선의 간재미. 전남인터넷신문 나주음식문화(2022-10-13).

허북구. 2021. 나주 홍어 라면의 여행 상품 가능성. 전남인터넷신문 나주문화들춰보기(2021-06-02).

허북구. 2020. 라면 여행과 광양 매실라면, 나주 홍어라면. 전남인터넷신문 허북구농업칼럼(2020-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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