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밀함의 예술, 완성에 끝이 없어”…불화장 전수자 ‘정수현’ [청년 장인, 전통을 잇다③]

2025-02-22

이나경 기자 greennforest21@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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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존 유일 보유자 임석환 ‘손제자’ 불교 미술 전공·신자 아니지만 민화·단청 배우며 호기심 생겨 “창작과 다른 매력… 전통 계승”

그림 안에 들어갈 인물을 배치하는 것으로 작업을 시작한다. 각각의 인물이 조화롭게 보이도록 얇은 붓으로 초안을 그린다. 한지 종이를 밀가루 풀을 써 벽면에 바르고, 그 위에 초지를 붙인 후 다시 천을 올린다. 종이가 마르며 희미하게 선이 드러나고, 다시 한번 선을 그린다. 채색을 올리고, 음영을 준다. 제일 마지막으로 눈, 코, 입 얼굴을 그리는 개안을 한다. 수개월에 거친 작품은 법당의 점안식을 거치며 비로소 깊은 호흡을 뱉어낸다.

현존하는 유일한 국가무형유산 불화장 보유자인 임석환(80) 장인의 손제자(제자의 제자) 격인 전수자 정수현씨(29)는 불교 미술의 전공자도, 불교 신자도 아니다. 얼굴만 봐선 심오한 종교의 세계와는 사뭇 다른 생기발랄함과 명랑함이 넘쳐난다. 하지만 그는 불화장을 통해 나와 가족, 주변 사람들의 건강과 평안, 안녕을 간절히 소망하는 마음에 깊이 매료됐다.

이에 안산에서 매일 새벽 6시 집을 나서 3시간 동안 각종 대중교통을 갈아타고 일산의 작업실로 향했다. 6개월을 하루도 빠짐없이 ‘출근 도장’을 찍으며 비로소 불화의 길을 걷게 됐다. 정씨는 임석환 장인에게 3년째 전수 교육을 받는 ‘전수생(전수자)’이다. 앞으로 1년가량 더 배움을 이어가 전수교육 과정을 수료하면 ‘이수자’ 시험(이수심사)을 칠 수 있는 자격이 부여된다.

“대학에서는 불교 미술과는 전혀 상관없는 시각디자인을 전공했어요.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라는 말이 있잖아요. 저는 그 말에 깊이 공감합니다. 워낙 전통 미술에 관심이 있었고, 처음에는 민화와 단청을 배우다 점차 깊게 배우다 보니 자연스럽게 불교 미술과 불화에 대해 궁금해졌습니다.”

‘불화(佛畵)’란 불교의 종교적인 이념을 표현한 그림이다. 만들어진 형태에 따라 ‘벽화’나 ‘탱화’ 등으로, 용도에 따라서는 사원의 분위기를 높여주는 장엄용, 대중에게 불교의 교리를 쉽게 전달해 주기 위한 교화용, 의식에 사용하는 예배용 불화로 나뉜다. 국가유산청에 따르면 그동안 불화 장인들은 단청장(국가무형문화재 제48호) 보유자에 의해 전승됐으나, 제작 목적이나 표현 방법의 차이 등 특성을 고려해 단일종목으로 분리되며 2006년 비로소 국가무형문화재로 단독 지정됐다.

20대 초중반의 나이, 종교와도 상관없는 불화를 배우겠다고 하자 주변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이어지기도 했다. 졸업 후 웹 디자인, 일러스트(삽화) 등의 분야로 들어선 친구들은 ‘불화’가 무엇인지조차 제대로 모르거나 ‘무서운 그림 아니냐?’라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씨는 오로지 새로운 작품세계를 배울 수 있다는 생각에 들뜬 기쁨만 있을 뿐이었다.

“우리나라 문화재(국가유산)의 상당수는 불교와 관련된 것이 많아요. 글을 몰랐던 사람들에게 부처님의 말씀인 경전을 예술로 시각화했다는 것도 흥미로웠고, 작업 과정에서 제 스스로 성장하는 모습도 많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의 말처럼 ‘불화’ 작업은 끊임없는 인내와 차분함, 참을성을 요구한다. 특히 ‘선’ 작업은 불화의 시작이자 끝이라고 할 수 있다.

“스승의 스승 때부터 내려오는 습화용 시왕초가 있습니다. 습화란 초(밑그림)를 옆에 놓고 눈으로 보고 옮겨 뜨는 것인데 처음 입문하면 수백에서 수천 장의 시왕초를 그려와야 합니다.”

불화는 보통 바닥에 두고 작업을 이어가는데 오로지 한 팔로만 온몸을 버텨야 하기에 작업이 쉽지 않다. 정씨도 처음에는 자세가 익숙하지 않아 바들바들 떨면서 선을 그렸다. 점차 필력이 길러지며 보다 매끄럽게 선을 그려가는 것을 보며 스스로 성장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앞서 임 장인에게 전수 교육을 받은 이문희 단청장 이수자(서울시 제31호)에게 5년째 배움을 받고 있다. 이 이수자와 함께 수원사의 칠성탱화부터 군산의 동국사, 세종시의 광제사 등에서 작품활동을 펼쳤다.

“가장 뿌듯했던 순간은 그림을 다 걸고 점안식을 하는데, 신도분들이 기도하던 때였습니다. 간절히 기도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허투루 그리면 안 되겠다는 책임감을 느끼게 됐습니다.”

그의 꿈은 ‘불화의 세계화’다. “이달 20일부터 선생님과 함께 이탈리아의 밀라노에서 한국의 불화 작가와 작품을 소개하는 ‘2025 한국불교예술전’ 전시에 참여하는데, 이처럼 불교미술의 정수인 불화가 한국뿐 아니라 세계에도 많이 알려지길 바라며 적극적으로 활동할 생각입니다. 또, 전통 불화는 고리타분하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계시는데 창작의 세계와는 또 다른 한편에서 전통의 가치를 이어가도록 노력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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