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험생 55만여 명의 인생행로에 큰 영향을 주는 202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이 지난 13일 끝났다. 그런데 올해 수능은 유독 씁쓸하다. 시험을 앞둔 교실 밖에서 챗GPT를 이용한 부정시험, 인공지능(AI) 커닝 논란이 잇따라 터졌다. AI가 인간의 사고를 대신하고, 학생들이 그 AI를 부정행위에 이용하는 현실을 보면서 의문을 갖게 된다. 수능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챗GPT 이용 부정시험·커닝 논란
문항풀이형 수능에 아직도 매몰
신뢰 회복하는 교육개혁 절실해

지금의 우리 교육 현실은 단순히 부정행위나 윤리의 문제만 심각한 것이 아니다. 수능은 이미 한국사회의 불평등을 재생산하는 거대한 컨베이어벨트가 된 지 오래다. 초등학교의 사교육 경쟁은 중학교 내신으로, 중등 단계의 서열은 다시 수능과 대학 서열로 이어진다. 서울 어느 지역에서 태어났느냐, 부모의 소득이 얼마냐가 점수로 환산되는 나라다. 이것이 지금의 대한민국 교육 구조다. 문제의 본질은 시험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사회적 지위를 결정하는 유일한 관문으로 기능하고 있다는 점이다.
AI가 인간보다 더 빠르고 정확하게 정답을 찾는 시대에 우리는 여전히 인간에게 정답 찾기를 훈련한다. AI가 이미 대체한 영역을 뒤늦게 답습하는 것이다. 학생들은 AI가 만든 답을 들키지 않는 방법을 배우고, 교사는 그것을 잡아내기 위한 탐지 기술을 동원한다. 무의미한 창과 방패의 경쟁이다. 이런 문항 풀이형 수능에 매몰된 사회는 결국 AI에게 가장 먼저 대체될 인력을 양산할 뿐이다.
수능의 공정성 논란과 챗GPT 부정시험 사태는 교육의 위기가 아니라 시스템의 파산을 보여준다. 낡은 시스템이 인재 양성이라는 본래의 목적을 잃은 채 불평등과 무의미한 경쟁만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교육개혁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정답만 찾는 인재로는 AI 시대에 생존 경쟁을 버티기 어렵다. 그런 인재만 길러내는 국가는 결국 경쟁력을 상실한 채 도태될 것이다. 교육은 더 이상 어느 정부 부처만의 행정개혁이 아니라 사회개혁의 초석이 돼야 한다. 그렇다면 누가 이 불신의 고리를 끊을 것인가. 교육개혁의 본질은 제도나 시험 형식이 아니라 신뢰 회복이다. 부모는 학교를 믿지 못하고, 대학은 학생부를 신뢰하지 않으며, 학생은 제도를 믿지 않는다. 이런 총체적 불신이 “그래도 수능이 가장 공정하다”는 낡은 믿음을 떠받치고 있다. 그러나 그 공정은 불평등의 제도화일뿐이다. 공정의 이름으로 불평등을 정당화하고, 평등의 이름으로 경쟁을 강화하는 이 모순된 시스템을 바로잡는 것이 개혁의 핵심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사회 전체의 대타협이다. 이를 위해 일선 교육감이 객관적 조정자가 될 수 있다고 본다.
물론 교육감이 대학 입시를 명령할 권한은 없다. 그러나 바로 그 권한 없음 때문에 교육감이 가장 객관적인 조정자가 될 수 있다. 정부와 대학은 개혁의 대상이자 이해당사자이지만, 교육감은 수천 개 학교와 수험생을 책임지는 공교육의 수장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핵심 이해당사자들인 주요 대학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 공적 플랫폼 역할을 주도할 최적임자가 될 수 있다.
예컨대 서울시교육청의 경우 ‘서울형 공교육 신뢰 인증제’ 같은 공정하고 투명한 평가 체계를 최초의 선도모델로 제시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를 협상의 지렛대로 삼아 학부모·교사·대학·산업계가 함께 참여하는 ‘서울교육개혁 10년 사회협약’을 끌어내면 좋겠다. 서울에서 시작된 이런 신뢰 회복 모델이 전국 표준이 될 때 비로소 수능이 바뀌고 사회의 불평등 구조도 변할 수 있다.
정치권도 이 문제를 5년짜리 정책이 아닌 국가적 지속 과제로 법제화해야 한다. 정권이 바뀌어도 교육개혁은 멈추지 말아야 한다. 교육은 정치의 종속변수가 아니라 한국사회의 미래를 설계하는 상수이기 때문이다.
수능은 단순한 시험이 아니라 한국사회의 구조적 불평등이 얼마나 뿌리 깊고 견고한지 비춰주는 거울이다. 이제는 그 거울 속 낡은 얼굴을 바꿔야 한다. AI 부정시험 시대에 정답만을 달달 암기하는 시험은 더 이상 미래 인재 양성에 적합하지 않다. 교육개혁은 곧 사회개혁의 시작이며, 수능 시험 개혁은 대한민국이 불평등의 굴레를 끊어내는 첫 단추다. 교육개혁을 더는 미룰 수 없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현철 서울교육자치시민회의 준비모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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