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민의 ‘죄와 벌’] 국가수사본부장님께

저는 변호사이지만, 이 글은 한 시민으로서 씁니다. 사기 피해를 보고 고소·고발을 했다가 경찰 수사로 더 큰 피해를 본 시민으로서 씁니다. 공익을 위해 씁니다. 3달 전(7월 12일 자) 본지에 ‘컴퓨터수리 사기’ 이야기를 쓴 것은 추가 사기 피해자를 막기 위해서였던 반면, 이 글은 경찰의 부실 수사의 피해를 줄이고 싶어서입니다.
2021년 이후 막강한 수사권이 명실상부 경찰의 손에 쥐어졌습니다. 이제 검찰 폐지도 카운트다운에 들어갔습니다. 공수처가 생겼고 중수청이 생긴다지만 이는 주로 거물을 겨냥한 수사기관일 뿐, 일반 시민들을 울리는 대다수의 범죄자를 잡는 일은 지금도, 앞으로도 경찰 몫입니다. 명절 선물 돌리듯 추석 전 검찰 폐지를 약속하고 실천한 국회는 과거 검찰권 남용만 말할 뿐, 범죄자 잡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으니 발 뻗고 자도 된다는 약속은 해주지 않습니다. 이런 상황에 국가수사본부장님이 보이지 않습니다. 범죄자, 잘 잡을 수 있나요.
사기범 고소해도 “민사로 푸시죠” 팔짱
저는 불안합니다. 형사 전문 변호사로서 요즘 경찰 수사가 얼마나 부실한지를 몸소 경험하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피의자 변호할 때는 나쁘지 않습니다. 한 번도 제 의뢰인이 억울하게 혐의가 있다고 송치된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피해자를 대리 고소할 때는 명백한 범죄자를 송치하게 하는 것조차 맨손으로 바위를 굴리듯 버겁습니다. 얼마 전에는 어느 전과자가 자신은 더 큰 범죄를 저질렀는데 경찰이 그건 불송치하고 작은 것만 송치해서 자신도 어안이 벙벙했다며 웃는 것을 보고 탄식했습니다. 시민으로서, 아이들의 부모로서, 23년간 나라 밥을 먹었던 사람으로서 우리 사회의 미래가 걱정됩니다. 제 주변 사람들은 다들 걱정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국가수사본부장께서 앞으로 시민들 울리는 범죄자를 더 철저히 잡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겠다고 약속하고 실천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는데 보기 어렵습니다. 설마 지금 경찰 수사가 부실하지 않다고 생각하시는 걸까요. 수사 일선의 경찰들이 고생이 많은 건, 매주 경찰에 드나들고, 매달 경찰지 ‘수사연구’에서 경찰관들 인터뷰도 해서 잘 압니다. 그러나 병을 치료하지 못하는 의사는 아무리 고생하고 친절해도 나쁜 의사입니다.

요즘의 부실 수사의 공통점을 말씀드리기 위해 지금부터 예시로 ‘컴퓨터수리 사기’ 사건 수사를 말씀드립니다. 일전에 노트북 부팅이 안 되어 인터넷 ‘컴퓨터수리’ 사이트에 연락하자 젊은 직원이 저의 집까지 와서 노트북을 살펴보더니 손상이 크다, 데이터 복구에 오랜 시간이 걸린다며 수리비는 약 10만원 정도라며 가지고 갔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사장이 전화해서 노트북 손상이 크다며 55만원을 요구했습니다. 비싸서 하지 않겠다니, 이미 8시간 밤샘 작업을 했다며 돈 안 주면 노트북 데이터가 어떻게 되든 자신은 모른다며 협박했습니다. 112에 신고하고 경찰을 대동하고 천호동의 그 영업장으로 가서 노트북 반환과 빼내어간 데이터 복원을 요구했으나 55만원을 내야만 준다고 해서 일단 노트북을 받으려고 냈습니다. 다음날 LG서비스센터에 갔더니 노트북과 데이터에 손상이 전혀 없다고 했습니다(7월 12일 자 본 칼럼 참조).
저는 다른 피해자들도 있을 것 같아서 KD경찰서에 고소 외 고발도 했습니다. ‘컴퓨터수리 사기’ 피해자들을 모아 민사소송도 대신해 드리려 했습니다. 이 지면에도 경고성 글을 썼습니다. 사기공화국이 되어가는 상황에서 사기를 막는 데 일조하고 싶었습니다.
놀랍게도 경찰은 이 사건을 무혐의로 판단했습니다. 그 이유는 제가 사기꾼의 사무실에 가서 수리 요청을 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제 이 사건을 소재로 요즘 (일부) 수사관들의 문제점을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나, 법리를 잘 모르니 쟁점을 엉뚱하게 잡습니다. 사기의 핵심은 기망행위입니다. 이 사건의 기망은 노트북에 손상이 없는데 있다고 거짓말한 것입니다. 당연히 노트북 손상 여부를 판단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손상이 없다는 LG전자서비스센터의 의견을 냈습니다. 놀랍게도 경찰 불송치결정문에는 손상 여부는 일언반구도 없습니다. 이는 강간범에게 무혐의 결정하면서 폭행 등 여부를 전혀 조사하지 않은 것과 같습니다. 전화해서 물어봐도 그걸 조사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또 사기는 거짓말하고 돈을 달라고 하는 순간 최소 사기미수죄가 성립합니다. 그 이후 사정은 이미 성립한 최소 사기미수죄에 영향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제가 나중에 찾아가서 정식으로 수리를 요청했으니 무혐의라고요?
둘, 판사보다 더 판사처럼 일합니다. 증거를 찾아 나서질 않고 책상 앞에 놓여있는 것만 보고 쉽게 무혐의로 판단합니다. 이 사건에서도 경찰은 당시 출동한 112순찰대에게 전화 한 번 해보지 않았다고 합니다. 했다면 제가 사기꾼에게 정식으로 수리를 요청했다는 어이없는 판단을 하진 않았겠지요. 누가 정식 수리 요청을 112 신고해서 경찰과 가서 합니까. 판사조차 증거가 부족해 보이면 어떤 증거가 없냐, 내보라고 요청하고 난 뒤에 조심스레 판단합니다. 그러나 요즘 경찰은 기계적으로 양측을 한 번씩만 조사하고는 양측 입장을 더 묻지도 않고 무혐의 결정을 내립니다. 또 판사보다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 원칙을 몇 곱절 쉽게 적용합니다. 이것은 “애매하면 곧바로 무죄”가 아니라 애매하면 진실을 확인할 모든 노력을 다하고 난 뒤에 적용하는 것입니다.
셋, 결정문이 너무 부실합니다. “이 사건은 증거가 없으므로 혐의 없다”는 결정문도 보았습니다. 고이즈미 총리 아들 고이즈미 신지로 대신이 한 “경기가 좋아지면 반드시 불경기에서 탈출할 수 있습니다”라는 말처럼 하나 마나 합니다. 사실상 한 줄짜리 결정문이 흔합니다. 세금 들여서 오랜 시간 걸려 수사한 만큼, 수사과정에서 확인된 사실은 최대한 써줘야 합니다. 그래야 진실에 보다 접근할 수 있고 피해자가 후속 민사소송을 할 수 있습니다. 범죄 요건 하나만 언급하며 이것이 인정되지 않으므로 혐의 없다는 식으로 결정하는 경우가 다수인데, 범죄의 모든 요건에 대해서 충족하는지 여부를 각각 다 써줘야 합니다. 그래야 설득력도 생기고 수사관 입장에서도 실수가 줄어듭니다.
넷, 재산범죄를 고소하면 자꾸 ‘민사사건’이라며 고소를 못하게 하거나 고소를 취하시키거나 수사 미진을 정당화하려 합니다. 사기 사건은 기망을 통해서 민사적 권리의무에 영향을 초래하는 범죄이므로 필연적으로 민사적 성격이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형사범죄입니다.
다섯, 수사관 경력이 너무 짧습니다. 순경·경장이 너무 많습니다. 2023년 통계상 수사 경력 1년 미만이 18%랍니다. 수사 베테랑이 수사를 하기 싫어해서라는데, 군대에서 베테랑 군인들이 전방에 있고 싶지 않다면 다 후방으로 보내주고 이등병·하사·소위만 남겨놓아도 되는 건가요. 지금 사기와의 전쟁이 필요한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여섯, 팀원이 수사능력이 부족한데 팀장들이 팀원이 수사를 어찌하고 있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니 수사과장은 알까요. 실질적으로 아무도 가르쳐 주는 분이 없이 경험이 일천한 수사관이 혼자서 수사라는 막중한 일을 하며 큰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경우를 자주 봅니다.
빌보드 1위보다 드문 ‘사기 총책 검거’
일곱, “검찰에 이의하세요”라는 말이 얼마나 무책임한 말인지를 모르는 것 같습니다. 이 사건에 대해 수사관과 팀장에게 전화해 노트북 손상을 왜 확인하지 않았냐고 하니 “검찰에 이의하세요”라는 말만 수없이 반복했습니다. 수사권이 경찰에 있는 것 아닌가요. 자기 수사를 자신 있게 설명하지도 못하나요. 그런 수사결과를 왜 내놓습니까. 검찰이 보완수사를 요구하면 경찰이 또 수사해야 할 텐데 자기 수사의 문제점이 있는지 피해자 말을 왜 안 들어보나요. 이제 검찰도 사라지면 뭐라고 변명할 건가요.
여덟, 탁구 선수 같습니다. 관할 핑퐁 적당히 하시죠.
아홉, 고발 수사는 더더욱 부실합니다. 고발은 검찰에 이의도 못하니까요. 이 사건에서도 컴퓨터수리 사기꾼의 계좌와 컴퓨터를 보면 다른 피해자들이 많을 것인데 그 부분 고발에 대해서는 아예 판단을 누락했습니다. 검찰에 이의가 불가능하니 그냥 뭉갠 건가요. 제가 고발하지 않더라도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범행할 것이 예상된다면 경찰이 먼저 나서서 일벌백계하고 세상에 알려 추가 피해를 막는 노력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경찰이 다른 피해자를 막으려는 시민의 노력에 찬물만 끼얹어서야 되겠습니까.
열, 너무 느립니다. 지면 관계상 이 정도만 하겠습니다. 경찰이 이 정도도 못 잡으니, 이렇게 사기가 판치는 데도 큰 사기조직 총책이 잡혔다는 소식은 우리나라 가수가 빌보드 1위를 했다는 소식보다 듣기 힘듭니다. 저는 경찰이 삼성서비스센터처럼 시민들이 범죄피해 신고만 하면 집까지 찾아와서 조사해주고, 쿠팡 새벽배송처럼, 다음날 범죄자를 구속해서 처벌해주는 이상향이 도래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시민이 범죄자보다 경찰 때문에 더 분노하는 사회가 안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정재민 변호사, 작가. 20여년간 판사, 법무부 송무심의관 등으로 일했다. 『보헤미안 랩소디』(세계문학상 수상작) 등의 소설과 『사람을 얼마나 믿어도 되는가』 『범죄사회』 등의 에세이집을 냈다. 현재 법무법인 예문정앤파트너스의 대표변호사로 형사·이혼·상속 사건을 주로 담당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