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을 위한 국민의 기업] 위기의 생명 구하는 출생통보제와 보호출산제의 힘

2024-09-26

한 달여 만에 임산부 697명 상담

19명 보호 출산과 입양 등 지원

막막한 산모에게 용기·희망도

지난해 6월 경기도 수원의 ‘영아 시신 유기 사건’은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줬다. 36세 여성이 2018년, 2019년 자녀 2명을 출산하고 바로 살해한 뒤 시신을 수년간 냉장고에 보관해 오다 경찰에 발견됐다. 숨진 영아는 신생아 번호는 받았으나 출생 신고가 되지 않은 사실이 드러났다. 소위 ‘그림자 아동’이었다. 이런 일이 끊이지 않았는데도 제대로 된 대책이 없었다. 1인당 GDP(국내총생산, 3만 4165달러) 세계 31위 국가에서 믿기 어려운 일들이 이어졌다.

수원 사건을 계기로 사회적 분노가 폭발했다. “더는 안 된다”는 공감대가 확산했고, 1년가량 노력한 끝에 7월 19일 출생통보제와 보호출산제가 시행됐다. 출생통보제는 의료기관에서 아이가 태어나면 출생 정보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을 거쳐 지방자치단체에 자동으로 통보하는 제도이다. UN 아동권리위원회는 그동안 “아동이 태어나면 즉시 등록될 권리를 보장하라”고 권고해 왔다.

출생통보제 때문에 신분 노출을 꺼려 병원 밖에서 아이를 낳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면서 위기 임신 보호출산제가 ‘세트 법률’로 시행됐다. 보호 출산을 신청하면 산모가 가명으로 산전 검진을 받고 출산할 수 있다. 독일·프랑스·미국 등의 선진국에서 비슷한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보호 출산을 택하기 전에는 전국 16개 위기 임산부 상담기관에서 산모가 최대한 ‘원 가정 양육’을 선택하도록 상담하고 지원한다. 이와 별도로 24시간 전용 상담 전화(1308)를 개설했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 7월 브리핑에서 “출생 통보제 시행 후 임신·출산 사실 노출을 꺼리는 일부 임산부의 병원 밖 출산, 아동 유기 증가가 우려돼 보호출산제를 도입했다”고 말했다.

성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8월 말까지 위기 임산부의 상담이 697건에 달했다. 19명의 산모가 보호 출산을 신청해 아이를 낳았다. 서울 서대문구에서 3건의 보호 출산이 진행됐다. 2명의 산모는 안전하게 출산했고, 아이들은 지자체 보호를 받으며 입양과 양육시설 입소를 기다리고 있다.

다른 1명은 산모가 보호 출산을 진행하다 ‘직접 양육’으로 마음을 돌렸다. 보호출산제는 산모가 일주일 이상 숙려(깊게 생각하고 궁리함) 기간을 거치게 돼 있는데, 이 과정에서 엄마의 모성애가 발동했다. 엄마는 보호 출산을 포기하고 실명으로 출생 신고를 했고, 한부모 가정이 됐다. 김송이 서대문구청 주무관은 “아이는 친부모가 키우는 게 가장 좋은데, 보호출산제 덕분에 아이가 엄마의 품을 떠나지 않게 됐다”고 말했다.

다른 지역에서는 아이 유기를 막은 경우가 있다. 한 산모가 “아동 유기를 생각하고 있다”고 전화하자 상담원들이 즉시 현장으로 달려갔고, 아기와 산모를 안전하게 보호했다. 복지부는 지난 10년간 유기 아동 숫자를 고려해 보호출산제로 태어나는 아이가 연간 100여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한다. 김상희 보건복지부 인구아동정책관은 지난 7월 브리핑에서 “독일에서 보호출산제(독일 용어는 신뢰출산제) 시행 후 약 50%가 ‘원 가정 양육’이나 입양을 선택했다”며 “한국도 가급적 원래 가정에서 양육할 수 있게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위기 임산부는 한부모 가족복지시설에서 안전한 출산 지원을 받는다. 이 시설은 상담·치료·교육·훈련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또 지역 상담기관을 통해 연계된 위기 임산부는 소득과 무관하게 모든 한부모가족시설(121개)에 입소할 수 있다. 기준중위소득 63% 이하 한부모 가구에 자녀당 월 21만 원(5만~10만원 추가 가능)의 양육비가 지원된다. 기준중위소득 65% 이하 청소년 한부모 가구에는 월 35만 원(0~1세 40만 원)가 지원된다. 취업 지원을 위해 가족센터에서 여성새로일하기센터의 직업교육훈련·여성인턴 과정 및 폴리텍대학 전문기술 과정과 연계한다.

김송이 주무관은 “출생통보제와 보호출산제가 시행되면서 위기 임산부의 익명이 보장돼 안전한 출산에 접근하게 됐고, 베이비박스에 아이를 유기하지 않고, 소중한 생명을 극단적인 위기 상황에 빠뜨리지 않게 됐다”고 말했다. 김 주무관은 “상담기관이 한부모 가정에게 주어지는 복지 서비스를 소개하고, 자립해서 양육할 수 있는 길을 알려주면 용기와 희망을 갖게 된다”고 말했다.

기고강영실 애란원 원장

위기임산부와 출생아 모두를 구명하는 제도의 정착을 바라며

올해 7월 19일부터 ‘위기임신보호출산제(보호출산제)’가 시행됐다. 이로써 뜻하지 않은 임신으로 도움이 필요한 여성은 전국 16개 지역상담기관의 ‘1308’ 365일 24시간 전화나 카카오톡채널 상담을 통해 필요로 하는 상담·지원을 받을 수 있다.

이 제도는 지난해 6월 수원 영아 사망사건 발생 이후, 출생미등록 아동 발생을 방지하고 아동을 보다 빈틈없이 보호하고자 마련된 ‘출생통보제’와 병행 도입됐다. 출생미등록, 병원 밖 출산, 영아 유기·학대 등의 배경에는 절박한 상황에 처한 임산부가 있다. 여러 사유로 뜻하지 않은 임신 뒤 경제적·사회적·심리적으로 출산이 곤란하며, 부모가 되는 결정이 무척이나 부담스러운 여성들이다. 보호출산제에서는 이러한 여성을 ‘위기임산부’로 정의하는데, 출생통보제를 통해 강 하류로 떠내려오는 출생 아이를 구명하는 것도 시급하지만 상류에서 아이를 떠내려 보내지 않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더 우선될 과제이다.

보호출산제는 위기임산부 지원에 주안점을 둔 제도이다. 임신으로 곤경에 빠진 여성에게 임신·출산으로 인한 부담을 덜고 안전한 출산 및 산전·후 건강을 보장하며 원가정에서 아동이 자라도록 지원해 안전한 양육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현재 지역상담기관에 상담 신청한 여성들은 개인정보를 보호받으며 개별 상담부터 산전·후 건강관리 및 분만, 병원 동행, 필요한 서비스 연계, 양육 및 경제 지원 등을 통해 건강하게 출산하고 아이의 장래를 숙고해 보호출산을 결정하고 있다. 그러나 나이가 어리거나 혼외임신 등의 상황으로 임신 또는 출산을 드러내거나 신원을 밝힐 수 없는 여성도 있다. 보호출산제를 통해 이러한 여성들이 가명으로 산전 진료를 받으며 출산하고 아이의 출생기록은 출생증서에 남겨둔 채 입양이나 가정위탁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여성의 임신 및 출산에 대한 사회심리적 부담을 줄이고 의료기관에서의 출산 및 산전·후 검진을 기피하지 않도록 한 것이다. 여성이 7일 이상 아기와 지내며 산후조리와 조건 없는 지원, 상담원의 신뢰를 바탕으로 한 숙려상담과 보호출산의 철회에 대한 안내·상담을 받고 아동 인도 후에도 6개월간의 사후상담 및 지원을 통해 입양특례법에 의한 입양 또는 양육으로의 전환 기회를 갖게 했다.

보건복지부는 전국을 통할하는 긴급전화번호 1308을 확보하면서 중앙상담기관은 아동권리보장원에, 지역상담기관은 위기임산부에 대한 상담·지원 경험이 많은 전국 16개 시도 출산지원시설 등에 각각 지정했다. 상담기관은 임신한 여성과 출생아의 건강을 위해, 홀로 고독하게가 아닌 병원에서 출산할 수 있도록, 드러낼 수 없는 임신으로 아이를 유기하지 않도록, 불안정한 상황을 딛고 아이를 잘 양육해내도록 ‘처음 상담이 마지막 상담처럼’, ‘한 상담원이 끝까지 신뢰있게’, ‘한 여성에게 온 마을을 선물’한다는 원칙 하에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앞으로 제도 본연의 목적이 상담 수행기관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 충분히 이해되어 위기임신 여성들을 잘 돌보고 지원함으로써 미래 주역인 우리 아이들이 충분히 보호받고 건강하게 자라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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