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 세계 시장에 철강제품을 저가에 공급하는 소위 ‘밀어내기’로 철강 주요 생산국의 질타를 받았던 중국이 최근 ‘양회’를 기점으로 철강재 감산을 천명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에 고율 관세를 부과하는 등 강한 압박을 펴자 주변국과의 무역분쟁의 소지가 있는 철강 부문부터 한발짝 물러난 것이다. 저가 공세에 고사 위기에 직면했던 한국 철강업계에도 숨통이 트일 거란 관측이 나온다.
7일 로이터에 따르면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NDRC)는 지난 5일 베이징에서 열린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철강공급 과잉을 완화하기 위한 산업 구조조정을 촉진하겠다”고 밝혔다. 로이터는 “NDRC는 감산 규모를 밝히지 않았지만, 중국 철강업계에서는 연간 5000만 톤(t)의 조강 생산을 감축할 것이라고 관측했다”며 “2019~2024년 탄소배출과 산업전환 관련 계획만을 밝혀왔던 NDRC가 철강 감산을 직접 언급한 것은 이번은 처음”이라고 평가했다.
로이터는 중국의 감산 이유에 대해 “중국 내 수요부진을 상쇄하기 위해 철강 수출을 추진했지만, 많은 국가가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은 지난달 20일 중국산 후판에 대해 27.91~38.02%의 반덤핑 관세를 부과하는 예비판정을 내렸다. 베트남도 최근 중국산 열연제품에 19.38~27.83%의 반덤핑 관세를, 유럽연합(EU)도 중국산 주석 도금강판에 최대 62.6%의 반덤핑 관세를 부과했다.
중국 철강업계의 수익성 악화도 감산 결정의 요인이다. 중국 경제매체 ‘차이신’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의 철강 순수출량은 1억390만t으로 2023년 8262만t보다 20.5% 늘었지만, 총수출액은 836억3100만 달러(약 120조8000억원)로 오히려 전년 대비 1.1% 줄었다. 수출을 더 많이했는데도 벌어들인 돈은 줄어든 것인데, 이는 중국의 철강 단가 하락과 직결돼 있다. 지난해 중국의 철강 단가는 t당 755.34달러(약 110만원)로 2023년보다 19.4% 하락했다.
조철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저가수출로 인한 자국 기업 적자를 그간 정부가 메우는 형태였지만, 최근 한계에 도달하자 철강산업 구조조정에 돌입한 것”이라며 “특히 한국, 유럽 등 중국 철강 주요 수입국이 반덤핑 관세를 부과하며 더는 밀어내기가 안 통할 것이라고 판단하자 자국 철강산업을 수술대에 올린 것 아니겠는가”라고 진단했다.
국내 철강업계는 중국의 감산 소식에 일단 기대감을 키우고 있다. ‘중국 생산·수출량 감소→철강재 국제가격 안정화→국산제품 경쟁력 강화’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시장에서 중국의 저가공세로 악화됐던 국내업체의 수익성이 회복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고 기대했다. 국내 철강업계 2사 영업이익은 포스코홀딩스 2조1740억원, 현대제철 1595억원으로 전년대비 각각 38.4%, 80.0% 감소했다.

게다가 중국이 양회에서 올해 경제성장률 목표를 ‘5% 안팎’으로 설정하면서 올해 재정 적자율을 국내총생산(GDP)의 4%인 5조6600억 위안(약 1130조원)으로 확대한 점에도 철강업계는 주목한다. 과감한 재정투입을 통한 경기부양책을 쓰겠다는 것이서 그간 부동산 침체로 인해 줄어든 중국 내 철강 수요가 늘어날 수 있어서다. 이재광 NH투자증권 연구원은 7일 보고서에서 “중국의 경기부양책이 (수출을 통한) 국내 업황 개선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국의 대(對)중국 철강 무역수지는 2022년 29억6111만 달러, 2023년 37억3838만 달러, 지난해 36억5093만 달러로 지속해서 적자였는데 그 폭이 줄어들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다만 부정적 의견도 있다. 일단 감산이 실제 이뤄질 지에 대한 의문이 많다. 중국 지방정부는 국유기업인 철강업체의 구조조정에 소극적이기 때문이다. 익명을 원한 철강업계 관계자는 “2010년 이후 중국 중앙정부가 수차례 감산 조치와 규제강화를 폈지만, 지방정부는 버티기로 일관해왔다”며 “만약 감산이 되더라도 열연강판 등 중저가 제품을 줄이고, 자동차 강판 및 선박용 후판 등 고부가가치 제품 비중은 늘어날 것이어서 이런 제품을 주력으로 삼는 국내 업계에는 감산의 영향이 제한적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편, 트럼프 행정부의 수입산 철강·알루미늄 25% 관세 부과 시점(3월 12일)이 다가오면서 철강업계의 우려는 커지고 있다. 무관세 수출쿼터(연간 264만t)도 사라질 가능성이 크다. 장상식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은 “관세가 부과되면 미국에서 생산되는 철강제품보다 가격경쟁력이 떨어질 것”이라며 “다만, 기존 쿼터제에 묶였던 일부 고급강의 미국 내 수요가 증가하는 점은 수출확대요인이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