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구미시 마하붓다사 주지 진오(眞悟·63) 스님은 달리기·트레일러닝 동호인들 사이에서 ‘탁발 마라토너’로 통한다. 대회 때마다 스스로 만든 승복 러닝 옷을 입고 쌩쌩 달려서다. 한때 풀코스(42.195㎞)를 3시간7분대에 뛰는 수준급 러너였다.
그의 달리기는 이타행과 자비심의 실천이다. 30여 년 전 심신 단련을 위해 시작한 스님의 달리기는 “기왕이면 대중을 돕는 데 쓰자”는 이타행으로 이어졌다. 큰병을 앓거나 공장에서 다친 이주 노동자가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모금활동을 한 게 탁발 마라톤의 시작이었다. 1㎞를 달리면 후원자들로부터 100원을 기부받는 식이다. 앉아서 하는 좌선(坐禪)이 아니라 달리면서 행하는 주선(走禪)이 그만의 수행법이다.

지난 15일 구미 금오산(976m) 자락에서 진오 스님을 만났다. 알고 보니 장거리 달리기의 선구자다. 2011년 처음 108㎞ 울트라마라톤을 뛴 뒤 국토 횡단(308㎞), 베트남 종단(700㎞), 미국 횡단(약 5300㎞) 등 수없이 많은 장거리 레이스를 달렸다. 미 대륙 횡단은 한국에서 세 번째라고 한다. 그렇게 탁발 마라톤으로만 뛴 거리가 2만여㎞, 지구 반 바퀴를 돌았다. 마라톤을 뛰기 위해 훈련한 구간까지 합하면 지구 한 바퀴를 훌쩍 넘긴다.
탁발 마라토너, “달리는 게 수행, 깨달음”
그와 함께 금오산 동쪽 능선 감은산(257m)에서 효자봉(528m), 엄마봉(543m), 도수령(473m)을 거쳐 법성사로 내려오는 약 10㎞의 길을 걸었다. 경사가 완만해 누구나 걷기 좋은 길이다. 또 지금 트레일에 들면 수북이 쌓인 낙엽과 함께 큰 나무 아래 작은 나무를 중심으로 아직 남아 있는 ‘속단풍’을 볼 수 있다. 금오산은 구미의 명산으로 능선을 따라 정상으로 이어지는 등산로가 다양하다. 또 산 아래엔 금오저수지 산책로 등 예쁜 길이 많다.
스님의 달리기는 청년 시절 아픔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스물다섯에 공군 군법사로 복무 중, 산 꼭대기 레이더 기지에 있는 병사들을 만나러 가는 도중에 교통사고를 당해 한쪽 눈을 잃는 사고를 당했다. 서울 성동기계공고 3학년 시절 출가해 6년째 불가에서 몸담고 있었지만, 한순간에 맞은 장애인 선고는 실의에 빠지지 않을 수 없게 했다. 크게 상심한 나머지 군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는 잠깐 ‘나쁜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때 군 병원 의사가 누워만 있지 말고 “달리기를 해보라”고 권했다. 달리기를 통해 마음을 추스른 스님의 이후 삶은 “누군가를 돕는 데 쓰자”고 결심했다. 제대 후 ‘자비의 전화’를 만들어 자신처럼 실의에 빠진 사람의 고민을 들어주는 일을 했다. 스님의 첫 번째 이타행이었다. 스님으로서 절에서 해야 할 일상과 대중 봉사활동을 병행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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