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캘리포니아주로 유학을 떠난 김 모(42) 씨는 요즘 매일 계산기를 두드린다. 주거에 들어가는 돈을 제외하더라도 차량 유지비와 식비 등을 합치면 한 달 생활비가 최소 4000달러(약 570만 원)에 달하기 때문이다. 이달 들어 환율이 1달러당 1430원대로 치솟으면서 부담은 더욱 커졌다. 김 씨는 “지난해 봄까지만 해도 월 500만 원대였던 생활비가 이제는 100만~200만 원은 더 든다”며 “코스트코에서 대량으로 장을 봐도 더는 소용이 없다”고 털어놓았다.
학업을 위해 미국행을 택한 유학생들과 학부모들의 한숨이 깊어졌다. 고환율이 장기화 조짐을 보이면서 지출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어서다. 아예 유학 계획을 미루거나 캐나다·호주 등 다른 국가로 눈을 돌리는 경우도 생겨나는 분위기다.
13일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의 학생 및 교환 방문자 통계에 따르면 지난달 현지 한인 유학생은 4만 4962명으로 집계돼 전년 동기 대비 4.8% 줄어들었다. 2년 전의 4만 8292명보다는 6.9% 감소한 수치다. 여기에는 미국 내 합법적으로 체류 중인 학생(F-1), 직업훈련(M-1), 교환 방문(J-1) 비자 소지자 등이 포함된다.
미국 내 한인 유학생의 감소에는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고공 행진 중인 물가가 가장 큰 제약 중 하나로 꼽힌다. 관세 여파에 이어 새 학기가 시작되는 9월부터 급등한 환율은 체감상 학비·생활비 부담을 특히 가중시켰다. 유학 준비생이나 학부모들이 모인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이 같은 고민을 밝히는 게시물이 우후죽순 올라오고 있다.
실제 한동안 등락을 거듭하던 환율은 최근 들어 재차 상승 압력을 받는 추세다. 이날 종가 기준 원·달러 환율은 1425원 선에서 형성됐다. 4월 30일 이후 최고치다. 증권가에서는 지난해 말 불거진 비상계엄 사태 이후 잠시 진정됐던 시장 심리가 미중 무역 갈등 재점화 등으로 다시 흔들리고 있다고 분석한다.
유학생들은 이 같은 흐름이 ‘겹악재’로 다가온다고 입을 모은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미국 비자 절차가 까다로워지면서 신규 발급이나 갱신 지연이 많아진 가운데 비용 부담까지 늘었기 때문이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체류 중인 또 다른 유학생 강 모 씨는 “이민·유학생들을 향한 현지 사회의 태도가 부쩍 경직된 점을 체감한다”며 “여건만 됐다면 제도가 더욱 유연한 캐나다 등에서의 유학을 택했을 것 같다”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