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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통해 자본주의의 병폐와 계층 문제를 꾸준히 풍자해온 봉준호 감독이 인터뷰를 통해 성장기에 경험한 군사 독재가 자신의 작품세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밝혔다.
22일(현지시간) 봉 감독은 영국 일간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최신작 ‘미키 17’와 관련해 이같이 말했다.
봉 감독이 연출한 ‘미키 17’은 2054년의 미래를 배경으로 얼음으로 뒤덮인 우주 행성 개척에 투입된 복제인간의 이야기다.
주인공 미키는 임무 수행 중 죽을 때마다 첨단 기술을 통해 복제 인간으로 되살아나 다시 일터로 투입된다.
무한히 대체 가능한 주인공과 같은 복제인간은 사회 하층인 노동자들로부터도 무시당하는 가장 낮은 계층이다.
주인공은 처음에는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등 어리숙한 모습을 보이지만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마음속에 계급의식이 싹튼다.
이에 대해 봉 감독은 “주인공은 반복적으로 재생되는 존재로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되새길 기회를 얻게 된다”며 “그런 점에서 보면 이 영화는 성장 영화로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봉 감독은 “군사 독재 정권에서는 계층간 격차가 더 크게 벌어진다”며 “난 가장 예민한 시기에 그런 환경을 겪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런 문제의식이 내면화했다”고 소개했다.
그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 집권할 당시 초등학생이었고, 퇴진 당시 연세대에서 사회학을 전공했다.
지금까지 봉 감독은 ‘설국열차’(2013), ‘기생충’(2019) 등을 통해 사회 계층 문제를 다뤄왔다.
그는 기생충을 예로 들면서 “‘왜 저 사람은 저런 식으로 행동할까’라는 질문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계층 문제를 건드리게 된다”며 “난 항상 개인과 그들이 속한 환경에 관심을 둔다”고 설명했다.
이어 “다만 노트북을 열고 시나리오를 쓰려고 할 때마다 머리에 시위용 두건을 두르는 것은 아니다”라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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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 감독은 영국 사회주의 리얼리즘 영화의 대가로 꼽히는 마이크 리와 켄 로치 감독에게 영향을 받았다고 소개했다.
특히 마이크 리 감독의 1990년대 작품 ‘네이키드’와 ‘비밀과 거짓말’을 언급하면서 “노동계급 인물들을 현실감 있게 그려내 감탄스러웠다”고 말했다.
봉 감독은 “나도 그분들처럼 되고 싶지만 솔직히 요즘은 낮잠 잘 생각부터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