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의 부조리, 한국의 밝은 미래

2025-02-23

그리스 문화를 가르치면서 자주 받는 질문 중 하나는 왜 그리스 비극은 그리도 과격하고 극악무도한 행위를 다루느냐는 것이다. 자식을 죽여 아버지에게 그 살을 먹이거나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한다. 자살이나 자해는 물론 인신 공양도 보통이다. 그리스 사회가 그리 폭력적이었던 걸까. 지난주 소개했던, 메데이아가 남편에게 복수하기 위해 자기 자식들을 죽이는 끔찍한 장면은 어떤 이유에서 석관으로 제작하도록 의뢰했을까.(사진)

스파이크 존즈 감독의 2013년 SF 영화 ‘그녀’에서 나는 그리스 비극의 궁금증에 대한 해답의 실마리를 얻었다. 몸이 없는 인공지능(AI) 여자 친구와 사랑에 빠지는 일은 영화가 그리는 시간 배경인 2025년 현재 아직 가능하지 않다. 하지만 영화의 시나리오가 크게 이질적으로 느껴지지는 않는다. 영화의 가상 상황이 현대인이 겪는 고립감의 은유적 표현임은 분명하다.

마찬가지로 그리스 비극에 그려진 것처럼 당시 사회가 특별히 가족을 살해하거나 식인 행위를 일삼지는 않았을 것이다. 비극의 잔혹함이 일상적인 삶을 고스란히 반영했다기보다, 비극의 뿌리가 실제 그리스 사회의 현실에 깊이 닿아 있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당시 그리스는 끊임없이 전쟁을 치렀다. 영아 사망률이 40%에 이르렀고, 가문 간의 원한이나 개인적인 보복에 따른 폭력은 물론 종교적인 폭력이 하나의 의식으로 만들어져 정당화되기도 했다.

그리스 비극은 잔혹함의 미화가 아니라 깊이 있는 윤리와 철학 탐구의 토대를 마련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한국에서 벌어지는 비상계엄 이후의 기괴하고도 비상식적인 국면 역시 그리스 신화처럼 한민족을 도덕적으로 승화하려는 이성의 간교(奸巧)로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지금 고난을 겪은 한국의 역사가 다시는 그런 혼란의 가능성에 노출되지 않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져 본다.

김승중 고고학자·토론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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