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그리고 타향

2025-01-22

피자집에 들렸다. 외국인 4명이 피자를 먹고 있었다. 순간 뇌리에 떠오른 것은 ‘스리랑카인?’

다 먹고 일어선 그들이 내게 공손하게 목례를 한다. 나도 같이 인사한 후 물었다.

“어디서 오셨어요?”, “스리랑카요.” 한국생활 10년부터 2주차까지이고 고향이 캔디라고 한다.

얼마 전 다녀온 캔디가 떠올랐다. 담헌 홍대용의 말처럼 여행은 실행이다.

“사람이 먼 여행을 하려면 책이란 것은 일부 노정기(路程記)이다. 여행하는 사람은 말을 먹이고 수레를 손질해 가지고 노정기에 따라서 말을 몰아 달려가야 하는 것이다. 말을 붙잡고 수레를 손질만 하고 달려가지는 않고 노정기만 외우고 있으면 여행의 계획은 이루어질 날이 없는 것이다.” 나쁜 놈과 이상한 놈을 피할 수 없지만 좋은 분도 만나기 위해 떠나는 과정.

스리랑카에서 나는 두 번 적선했다. 캔디에서 구걸하는 노인에게 1백 루피를 줬다. 그러자 내게 4백 루피를 달라고 한다. 그 뒤로는 걸인을 보고 지나쳤다. 두 번째는 여인이 이제 3살이나 되 보이는 딸을 데리고 앉아 있었다. 조카 하윤이 생각에 그냥 지나칠 수 없어 2백 루피를 건넸다.

그럼에도 캔디는 좋은 분을 만나게 해준 아름다운 도시였다. 우여곡절 끝에 찾은 캔디 숙소에서 하루 밤을 자고 나와 홀로 걷고 있는데 부부가 탄 승용차가 멈춘다. 어디 가는 지 묻고, 캔디 호수로 간다는 내 말에 거기까지 태워주셨다. 차안에서 그들은 따뜻한 말과 더불어 여행에 대한 소소한 조언도 해줬다. 캔디 호수에 내려 돌아보던 중 전통 혼례를 보게 되었다.

눈으로 보내는 내 축하에 신혼부부도 화답했다. 그들의 행복을 기원한다.

스리랑카에서 내게 텃세(?)를 과시하던 사람들도 적잖게 만났다. 그 중 한 사람에게 이렇게 말했다. “스리랑카에선 내가 소수지만 당신이 한국에 오면 그 입장은 정반대가 될 겁니다.”

호의를 사기로 전환해 4천 루피(약 2만원)를 받아간 사람에겐 이렇게 말했다.

“If you come to Korea, I will welcome you.” 그는 내 눈을 피했다.

<오리엔탈리즘>을 쓴 에드워드 사이드는 평생 이방인으로 살았다. 그가 생전 가장 애송했던 빅토르 위고의 시다.

“고향을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직 상냥한 초보자다. 모든 땅을 자기 고향으로 보는 사람은 이미 강한 사람이다. 그러나 전 세계를 하나의 타향으로 보는 사람은 완벽하다.”

우리 모두는 타향에 살고 있다. 그 타향에서 소수가 된 나를 자각할 수 있다면 배려와 겸손은 불가피하다. 내가 얼마 전 캔디에 다녀왔다고 하자 4명의 스리랑카인은 더욱 반가워했다.

그들이 한국에서 경제적 성공과 함께 좋은 기억을 간직하길 바란다.

장상록 <완주군농업기술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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