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두 달만에 첫 휴가를 떠난다. 휴가지는 경남 거제 인근의 저도다. 대통령실은 지난 1일 “이 대통령은 주말인 2일부터 거제 저도에 머물며 정국 구상을 가다듬고, 독서와 영화감상 등으로 재충전의 시간도 가질 예정”이라며 “휴가 기간에도 민생 등 주요 국정 현안은 계속 챙기겠단 방침”이라고 밝혔다. 공식 휴가 기간은 4∼8일이지만, 휴일부터 치면 일주일간 재충전 시간을 갖는 셈이다.
‘워커홀릭’으로 소문난 이 대통령 주변에서는 휴가 결정 자체가 정치적 메시지라는 해석이 나온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3일 취임 30일을 맞아 연 기자회견에서 “(성남시장 시절) 이상하게 제가 휴가 가면 비가 와서 수재가 난다든지 한다. ‘선출직 공직자가 휴가가 어디 있느냐, 눈 감고 쉬면 휴가고 눈 뜨고 일하면 직장이지’라면서 공식 휴가를 별로 안 가졌다”고 말해 대통령실 직원들을 순간 긴장시켰다.
여권 관계자는 “이 대통령은 지자체장 때나 민주당 대표 시절에도 아예 휴가를 안 가거나, 자택에서 업무를 봤다”며 “그랬던 대통령이 관저도 아닌 지방으로 멀리 휴가를 떠난다는 것 자체가 국정 운영이 안정적으로, 탄력을 받았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대통령실 내부에서는 한·미 정상회담이라는 변수가 생겼는데도 이 대통령이 휴가를 감행하는 건 이미 타결된 양국 간 관세 협상 결과에 대한 자신감이 담긴 행보라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기자회견에서 “공직사회가 안정이 되면, 선장이 맨날 갑판 위에 올라가 항해사한테 지시를 안 해도 되는 것처럼 여유가 많이 생긴다”며 “그 체제를 휴가 갈 때까지 갖출 수 있을지 약간 의문이긴 한데, 잘하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첫 휴가지로 대통령 별장인 청해대(靑海臺)와 군사시설이 위치한 저도를 낙점한 걸 두고는 “안보 상징성이 큰 섬을 방문해 안보를 중시한다는 메시지를 중도·보수 진영에 폭 넓게 피력할 수 있을 것”(민주당 관계자)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여권에서는 정부가 해수부 부산 이전을 추진하는 가운데 이 대통령의 휴가 행보가 경남(PK) 지역 민심을 한층 끌어올릴 것이라는 기대도 감지된다.

역대 대통령들은 통상 7월 말~8월 초에 휴가를 떠났다. 재충전 뿐 아니라 중요한 정국 구상에 골몰하는 시간이었다. 특히 취임 후 첫 휴가에서는 대통령의 정치적 결단이 이뤄지는 경우가 잦았다. 1993년 8월 첫 여름 휴가를 마친 직후 금융실명제법을 전격 발표했던 김영삼(YS) 전 대통령이 대표적이다. 당시 언론은 휴가지 이름을 딴 ‘청남대 구상’을 대서특필했다.
취임 초 국정 지지율이 20%대에 머물렀던 윤석열 전 대통령도 첫 휴가 직후 홍보수석을 교체하고 국정기획수석을 신설하는 등의 대통령실 개편을 단행했다. 당시 여론을 의식해 서울 서초동 자택에서 휴가를 보낸 윤 전 대통령은 서울 대학로에서 연극 ‘2호선 세입자’를 감상한 뒤 배우들과 저녁을 먹는 깜짝 행보로 국민 소통을 시도했다.

2013년 박근혜 전 대통령 역시 첫 휴가 직후 비서실장과 수석비서관 4명을 일거에 교체했다. 당시 바닷가 모래사장에 ‘저도의 추억’이란 글씨를 새겨넣는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렸는데, 지지층에서 큰 화제가 됐다. 부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이 저도를 애정해 1972년 청해대를 대통령 공식 별장으로 지정하고 함께 여름을 보냈던 기억을 소환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역대 대통령이 휴가를 쉽게 떠났던 건 아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취임 첫해인 1998년 IMF 외환위기로 휴가를 반납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2017년 첫 휴가를 강원도 평창에서 보냈지만, 이후 휴가철마다 불거진 대내외 악재로 3년 연속 휴가를 가지 못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역시 2004년 탄핵 정국, 2006년 북한 미사일 발사로 관저 휴가를 보내다 임기 마지막 해인 2007년 아프가니스탄 한국인 피랍사건으로 휴가를 취소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