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속노화 열풍이 거세다. 한 마디로 ‘느리게 늙기’다. 노화(aging)의 속도를 늦추고 건강한 삶을 오래 유지하자는 것이다. 단순히 수명만을 연장하는 게 아니라 질병없이 신체적·정신적으로 오랫동안 건강하게 지내다 막판에 짧게 돌봄을 받는 게 목표다. 반대는 가속노화다. 2000년대의 웰빙, 2010년대의 힐링에 이어 2020년대 들어 폭넓게 공감을 얻는 듯하다. 이와 유사한 개념으로 웰에이징, 헬시에이징 등이 사용되고 있다. 또 화장품분야에서는 슬로우 에이징(Slow aging)이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잡았다. 예전에 노화를 막는다는 의미의 항노화(Anti-aging)에서 천천히 자연스럽게 늙는 개념으로 바뀐 것이다. 나아가 최근에는 AI 발달로 AI가 설계한 회춘 단백질이 늙은 세포를 젊게 만들 수 있게 되었다. 항노화를 넘어 역노화(Reverse aging)의 단계에 들어선 것이다.
저속노화 개념은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정희원 교수가 책과 유튜브 채널을 통해 주장하면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확산의 근저에는 한국인의 잘못된 습관이 깔려있다. 영국 의학 저널 <랜싯(Lancet)>의 최근 논문은 한국인에 대한 놀라운 결과를 발표했다. 매우 적은 운동량과 자극적이고 매운맛을 즐기는 식습관, 심각한 디지털 미디어 중독과 높은 스트레스, 여기에 세계 1위의 우울감 호소와 OECD 국가 중 가장 낮은 수면량 등이 그것이다. 이로 인해 한국은 가속사회요, 한국인은 가속노화에 심각하게 노출돼 있다는 것이다. 특히 젊은 세대는 부모 세대보다 빠르게 늙는 환경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를 바로잡기 위해 정 교수는 한국식 MIND 식사, 즉 저속노화 식사를 꾸준히 실천할 것을 권한다. 주요 원칙은 6가지다. △통곡물과 콩, 견과류를 통해 주요 영양소를 섭취하기 △채소와 과일을 많이 먹기 △기름 종류는 올리브 오일을 주로 사용하기 △육류는 생선, 가금류를 많이 먹고 붉은 고기와 가공육류, 치즈 등은 조금만 섭취하기 △튀김, 과자, 탄산음료 등을 통한 단순당과 정제곡물 섭취 줄이기 △술은 하루 와인 한잔 정도까지 절주하기 등이다.
이 중에서도 정 교수는 '흰 쌀밥'을 '콩을 많이 넣은 잡곡밥'으로 바꾸는 방법을 강조한다. 정제곡물인 백미를 현미, 귀리 등의 통곡물과 잡곡으로 바꿔 혈당을 느리게 높이면서도 콩을 더해 건강한 단백질의 섭취율을 함께 늘리는 것이다. 다만 저속노화 식단은 소화가 천천히 진행되기 때문에 소화기계가 약한 사람, 노인, 근감소증환자, 악액질(전신쇠약)환자 등은 피해야 한다. 근육량이 쉽게 줄어드는 65세 이후 노년기(여성은 완경 이후)부터는 육류 섭취를 줄이지 않고 유지하는 것도 필요하다.
이러한 식습관 외에 삶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 젊은 감성, 항상 새로운 공부에 참여하기, 청력·시력 보존, 사회 활동, 봉사 등도 노화를 늦추는 브레이크라고 한다. 결국 건강한 음식을 먹고, 잘 자고, 운동을 게을리 하지 않으면서 사회적 관계를 원활히 하는 것이 느리게 늙는 비결이 아닐까 싶다. (조상진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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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진 chosj@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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